Q1. 병적인 양심
남편은 매주 주일미사에 참례하면서도 영성체는 하지 않으려 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아주 건실한 사람인데 아주 작은 잘못에도 속을 앓고 자신처럼 세속적으로 살며 죄를 짓는 사람은 성체를 가까이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런 남편을 두고 신자들은 성인 같은 사람이라고 하는데 왠지 제 마음은 답답하기만 합니다.A. 신자 중에 가끔 남편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아주 사소한 잘못, 고의성이 없는 잘못을 해도 속앓이를 하면서 자기 같은 죄인을 하느님께서 용서해 주실지 자신이 없다고들 합니다. 이분들은 왜 소죄를 짓고도 성체를 영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병적인 양심'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양심이란 말을 참 많이 사용합니다. 양심적이다, 양심 없는 놈, 양심의 가책 등 양심이란 말은 일상에서 빈번히 사용됩니다. 그만큼 양심은 사람들이 공동체를 유지하고 사는데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양심이 다 좋고 옳은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개인이 가진 양심이 천양지차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진 각자의 양심은 그 건강성의 여부를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양심이란 내가 가진 도덕관에 어긋난 행동을 했을 때 일어나는 감정입니다.
그런데 내가 가진 도덕관이 과연 건강하며,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것이냐 하면, 그렇지 않은 때도 있습니다. 병적으로 강박적인 신념을 도덕적인 양심과 혼동해서 자신을 심하게 학대하는 바람에 병적인 양심이 생기기도 합니다.
이처럼 내가 가진 양심이 모두 옳고 건강한 것만은 아니어서, 내 안에서 양심의 가책이 일어났을 때 그 감정이 어디서 온 것인지 그리고 건강한 것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만약 이런 점검 없이 자기 양심대로만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가장 힘든 것은 공격적 성격장애를 가진 이들에게 휘둘림을 당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이들에게 병적인 양심을 가진 분들은 착취 대상입니다. 또 병적인 양심을 가진 분들에게는 늘 만성피로가 따라다닙니다. 늘 쉬지 않고 자신을 채찍질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께도 가까이 가지 못합니다. 자신은 주님 곁에 갈 수 없는 죄인이라는 생각이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양심적인 삶은 신앙인이 지향해야 할 삶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강박적이고 지나치게 도덕적인 양심은 건강성을 반드시 점검해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늘 마음 안에 서러움을 갖고 사는 불행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들이 특별히 묵상해보면 좋을 복음구절이 있습니다.
루카복음 15장 11-32절에 나오는 둘째아들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에게서 받은 재물을 모두 탕진하고 집으로 돌아온 둘째아들. 그는 세상살이를 꼭대기에서 밑바닥까지 경험하면서 아버지의 좋으심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만약 그가 건강한 양심이 아닌 병적인 양심의 소유자였다면 자책하고 자학하느라 절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해 낯선 곳에서 객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마음을 두 번 죽이는 불효자가 됐을 것입니다. 이 복음을 잘 묵상하면서 내 죄보다 아버지의 사랑이 더 크심을 믿고, 아버지께 나를 송두리째 봉헌하는 마음을 갖고 산다면 병적인 양심이 '건강한 양심'으로 변화할 것입니다.
Q2. 건강한 회개
제 대모님은 아주 열심인 분입니다. 그런데 그분은 신자들은 죄를 짓는 자리에 가서는 안 된다면서 웬만한 놀이자리에는 끼지 않고 저에게도 가능하면 혼자 기도하면서 깨끗하게 살라고 하십니다. 저는 사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데, 대모님 말씀처럼 사람들을 피해 오로지 기도하고 죄에 대해 회개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지요? A. 교회 안에서 사용하는 회개라는 말은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예전에 회개는 '죄를 짓지 않고 사는 삶'에 초점을 맞춰 죄를 피하는 것을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회개를 단순히 죄를 피하고 죄를 짓지 않는 삶으로 국한하는 것은 신앙생활의 폭을 협소하게 하고, 하느님이 주신 자신의 자아실현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회개란 개념을 능동적이고 광의의 개념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넓은 의미의 회개란 '관계의 회복'입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세 가지 관계를 맺습니다. '하느님과 나와의 관계', '나와 너와의 관계', 그리고 '나와 나 자신의 관계'입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이 관계를 망가뜨리는 것이고, 회개란 망가진 관계를 다시 회복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회개란 사람을 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만나면서 관계 형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같이 하라"는 말씀은 관계 회복에 대한 가장 적극적인 강조의 말씀입니다.
진정 회개하는 사람은 건강한 관계를 넓혀가는 사람이란 것을 잊지 마시고, 하느님이 내게 보내주신 모든 사람과 건강한 관계를 맺는 데 노력해서 진정한 회개의 기쁨을 맛보시길 바랍니다.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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