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 사실은 인정하지만 무신론 진화이론 용납 안해
가톨릭교회는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치는데 그러면 진화론을 반대하는지요? 우선 관점을 정확히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흔히 창조론과 진화론을 반대되는 개념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생각은 전제부터가 잘못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창조론은 기본적으로 세상 기원이 어디에 있느냐에 관한 것이고, 진화론은 세상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살펴봅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지난 1996년 10월 '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주제로 총회를 열고 교황청 과학원 위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진화론과 관련해 중요한 언급을 했습니다. 교황은 "오늘날 새로운 지식은 진화이론을 하나의 가설 이상으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며 진화론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밝힌 것입니다. 이는 교황 비오 12세가 1950년 회칙 「인류」(Humani generis)에서 진화론에 대해 '그 반대의 가설에 대해서와 똑같이 깊이 연구 조사하고 반성할 가치가 있는 진지한 가설'이라고 밝힌 것에 비해 진일보한 것이었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러나 "진화이론들에는 유물론적이고 환원주의적(생명 현상을 물리 화학적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다는 주의) 해석도 있고 영적 해석도 있다"며 진화이론을 무조건 다 수용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진화론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을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가톨릭교회는 진화의 일반적 사실에 대해서는 부정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종말을 역사의 완성, 세상의 완성으로 이해하는데 이것은 진화와 맥을 같이합니다. 그래서 과학적으로 검증된 진화이론은 배격하지 않습니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오늘날 새로운 지식은 진화이론을 하나의 가설 이상으로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고 한 것은 이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화론에는 다양한 이론이 있습니다. 무신론에 바탕을 둔 진화이론이 있는가 하면 유신론에 바탕을 둔 진화이론도 있습니다. 무신론적 진화이론은 물질이 우연히 또는 저절로 결합해서 생명체가 생겨났다고 보는 이론이고, 유신론적 진화이론은 만물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창조주가 있다고 보는 이론입니다. 교회는 당연히 무신론적 진화이론을 배격합니다. 진화이론을 동식물계에 적용할 때와 인간에게 적용할 때도 구별이 필요합니다. 생물학적 진화이론이 단지 가설이 아니라 검증된 이론일 경우 그 진화이론은 인간 육체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육체만이 아니라 육체와 영혼이 결합된 존재입니다. 인간이 진화의 산물일 뿐이라는 주장은 교회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인간 육체가 생물학적 진화의 영향을 받는다 하더라도 인간 영혼은 생물학적 진화의 산물일 수 없으며 하느님의 창조적 행위에서 비롯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최근에는 개신교계 일각에서 진화론에 대처해 창조론을 정당화하고자 지적 설계(Intellect Design)론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지적 설계론이란 만물의 기원에는 정밀한 설계에 따라서 만물이 움직이도록 한 지적 설계자가 존재하고 지적 설계의 결과를 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이 지적설계론은 객관적 타당성을 지닌 과학이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대체적 입장입니다. 물론 가톨릭교회는 이 지적설계론을 배격합니다.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는 지적설계론은 과학이 아니기 때문이고, 둘째는 창조가 정밀하게 설계된 대로 이루어진다는 지적 설계론은 창조가 하느님의 자유로운 행위라는 또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물(은사)이라는 가톨릭교회의 가르침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리합니다 가톨릭교회는 진화 이론이라고해서 무조건 배격하지는 않습니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진화이론에 대해서는 거부하지 않습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지난해 9월 옛 제자들과 창조와 진화에 관한 토론을 하면서 우주의 발전에 대한 설명에 있어서 신앙과 과학은 전혀 충돌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모든 것을 진화로만 설명하려는 주장은 수용하지 않습니다. 그런 주장은 과학이 아니라 주장일 뿐입니다. 종교와 과학, 신앙과 이성의 관계에 대해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주 멋진 말을 남겼습니다. "신앙과 이성(Fides et Ratio)은 인간 정신이 진리를 바라보려고 날아오르는 두 날개와 같습니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신앙과 이성」 1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