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그분들이 바로 우리 부모님

namsarang 2009. 10. 2. 22:22

[사목일기]

그분들이 바로 우리 부모님


                                                                                임용환 신부(서울 삼양동선교본당 주임)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마태 12, 49).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느 날 오후,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신부님이셔? 시간 있으면 놀러 오셔!" "아! 할아버지, 잘 지내시죠? 오늘은 제가 안되겠는데요. 다음에 갈게요." "바쁘시구먼, 건강하셔!"

 할아버지의 섭한 마음이 수화기 속에서 묻어났다. 길 건너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다. 가끔씩 찾아뵈었더니 이제는 손수 전화도 주신다.

 며칠 후 가게에 들러 막걸리 한 병과 간단한 안주거리를 사들고 할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할아버지 집은 20층, 맨 꼭대기다.

 "뭐, 바쁜데 오셔." "할아버지 보고 싶어서 왔죠."

 작은 상을 펴고 갖고 온 막걸리와 안주를 꺼내놓았다.

 "뭐 이런 걸 다 사오고 그러셔." "할아버지 막걸리 좋아하시잖아요."

 술을 먹게 되면 꼭 막걸리를 마시란다. 소주는 독해서 속 버린다고. 한잔 두잔, 분위기는 익어가고 할아버지 이야기 보따리가 슬슬 풀어졌다. 어릴 때 기계체조를 하다 다쳐서 한 쪽 다리를 못 쓰게 된 이야기, 서울에 올라와 힘들게 장사한 이야기, 어려울 때 힘이 돼주었던 은인 이야기 등. 이야기하다 눈물을 보이시기도 하고, 멋들어지게 노래 한가락을 뽑기도 하셨다. 할아버지를 뵙고 나오는 길은 늘 기쁨과 슬픔이 뒤섞여 흘렀다.

 현재 한국사회는 빠르게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다. 노인인구는 이미 10%를 넘어섰다. 가끔씩 모아 놓은 종이상자며 빈 병을 내다놓으면 금세 없어진다. 그것들을 모아다 파는 할머니들이 서로 경쟁하듯 가져가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것들을 수거해 가시는 할머니들을 볼 수 있다.

 과거에는 가정이나 지역사회에서 존중과 보살핌을 받으셨던 어르신들이 산업사회로 인한 핵가족화가 되면서 가족들로부터 돌봄을 받지 못해, 또는 스스로 짐이 되기 싫어 혼자 생활하시는 분들이 여기만 해도 한두 분이 아니다. 자식들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면서 자녀가 있다는 이유로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하는 분들도 많다.

 운동한다고 지팡이에 의존해 불안한 걸음으로 동네 골목을 왔다 갔다 하시는 할머니가 있다. 딸은 일반 분양 아파트에 살고, 당신은 지하 단칸방에 사신다. 전기와 가스 비용이 아까워 전기장판도, 보일러도 사용하길 꺼리면서 늘 전기, 가스값이 너무 많이 나온다고 걱정이다. 서울은 너무 비싸다고 지방에서 수술을 하고 오시는 할머니, 전세값이 너무 올라 앞으로는 서울에서 못 살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늘 눈에 밟힌다.

 오늘도 건강 걱정, 생활비 걱정과 외로움으로 잠 못 드시는 어르신들, 그 분들이 바로 다름 아닌 우리 부모님들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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