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하느님이신 농부

namsarang 2009. 10. 1. 22:07

[사목일기]

하느님이신 농부


                                                                              임용환 신부(서울 삼양동선교본당 주임)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요한 15,1).
 
 농부이신 하느님은 우리들을 어떻게 키우실까?

 '빈민사목 청소년 농촌 봉사단'이란 이름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는 솔뫼농장을 찾았다. 주제는 '하느님은 농부이시다'이다. 솔뫼농장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과 경북 상주시 화북면 일대에서 유기농업으로 농사를 짓는 농부들 모임이다.

 아이들이 할 일은 옥수수 밭에 있는 비닐을 수거하고 옥수수를 잘라 내는 일이다. 이런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라 처음에는 의욕을 갖고 덤비지만 이내 지친다. 그래도 생각보다는 열심히 한다. 재미있어 하는 아이도 있고, 얼마 못가 밭에 주저앉아 쉬는 아이, 목마르다고 물 뜨러 가는 아이, 금세 익숙해져 낫질을 하는 아이, 옆에서 잘한다고 응원하는 아이도 보인다.

 쉬고 있는 아이들에게 "야! 힘들게 일하고 있는 아이들 안보여 빨리 일어나!"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힘들지 좀 쉬었다 해"라고 할 것인가. 전자의 말을 들은 아이들은 마지못해 억지로 일하지만, 후자의 말을 들은 아이들은 잠시 쉬었다 즐겁게 일한다.

 시간이 좀 지나자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눠진다. 비닐을 걷는 아이, 그 비닐을 모으는 아이, 모아진 비닐을 한군데에 쌓아 놓는 아이, 옥수수를 자르는 아이, 옥수수를 따는 아이. 모두에게 같은 일을, 같은 강도로, 같은 시간을 똑같이 시킬 수는 없다. 아이들은 다 다르다.

 저녁에는 용산참사에 관한 동영상을 보여줬다. 염려한 것과는 달리 그때와 지금 상황을 이야기해 줄 때 다들 집중해서 듣는다. 동영상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성장시키는 것은 어느 한쪽만을 보여주거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한쪽도, 즉 거짓 없이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믿는다.

 설거지와 청소는 공평하게 나눠서 한다.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자유시간이다. 공을 차는 아이들, 잠자는 아이들, 게임을 하거나 수다를 떠는 아이들,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인다고 열심히 꽃을 따는 아이들. "보시니 참 좋았다"(창세 1,31)는 성경 말씀대로 아이들이 제일 힘 있고 생기 있고 예뻐 보이는 시간이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어서다. 그렇게 아이들을 살 게 해 줄 수는 없을까?

 하느님이신 농부는 우리들을 모두 똑같이 키우시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들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각 농작물마다 심는 시기와 키우는 방법이 다르듯, 우리들 하나하나도 각각 다른 방법으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맞는 방법으로 키우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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