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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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당이 싫어요", 진실게임 종지부
발행일 : 2009.12.02 / 여론/독자 A33 면
북한 무장공비는 '북한이 좋니, 남한이 좋니'라고 물었고, 총명하기로 소문난 아홉 살짜리 초등학교 2학년생 이승복은 또박또박 대답했다. 순간 무장공비는 소리를 지르며 승복의 멱살을 잡아 올렸고, 다른 공비는 대검을 꺼내 승복의 입을 찢으며 살해했다.
1968년 12월 9일, 6·25 종전 후 북한 공비가 민간인 어린이를 잔인하게 학살한 첫 사건(군사편찬연구소 조성훈 박사)인 '이승복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날 오후 7시쯤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계방산 기슭 이석우씨 집. 저녁식사를 마친 가족들은 평온한 일상에 젖어있었다. 아버지 이씨는 이웃 이삿짐을 나르러 집을 나섰고, 어머니 주대하씨는 윗방에서 메주를 쑤고 있었다. 쪽문으로 연결된 아랫방에선 큰형 학관(15)이 옥수수를 다듬었고 그 옆에서 둘째 승복은 숙제를 하고 있었다. 두 동생 승수(7)·승자(4)는 잠에 빠져 있었다.
집 밖에서 누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총을 든 낯선 남자 5명이 불쑥 방에 들이닥쳤다. 이들은 그해 10월부터 전국을 공포에 떨게 한 '울진·삼척 무장공비침투사건'으로 남파된 북한 무장공비 120명의 잔당이었다.
이날 밤 공비들은 승복에 이어 승수와 승자를 벽에 내동댕이쳐 살해했고, 어머니 주씨도 공비 대검에 여러 차례 찔려 숨졌다. 큰형 학관만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이 천인공노할 사건은 이틀 후인 12월 11일 조선일보에 '잔비(殘匪), 일가 4명 참살.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 찢어'라는 기사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하지만 이 기사는 1990년대 들어, 일부 안티조선 세력의 집요한 공격에 시달렸다. 1992년 김종배 전 미디어오늘 편집장이 '저널리즘'이란 잡지에 "조선일보 기자가 현장에 없었고 승복군 형을 만나지 않았다"며 "조선일보 보도는 추측과 문장력으로 쓴 작문"이라고 주장했다.
저널리즘 편집인이었던 김주언씨는 김대중 정권 출범 직후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그는 언론개혁시민연대 추진위원장을 맡아 1998년 8~9월 서울시청 앞 보도와 부산역 광장에서 '오보전시회'를 열어, 조선일보가 반공구호를 만들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허위 주장을 했다.
이들의 억지 주장은 10년여에 걸친 법정공방 끝에 종지부를 찍었다. 대법원은 2006년 11월 '형사재판' 최종심에서 "이승복 기사는 조선일보 기자들이 현장을 취재해 작성한 사실보도"라며 김주언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의 유죄를 확정했다. 또 지난 2월 대법원 2부는 조선일보가 김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최종심에서 "김씨는 조선일보에 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 '이승복 보도'가 진실이었음을 재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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