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올해는 사도 바오로 탄생 2000년을 기념하는 바오로해다. 그리스 터키 지의 성지를 순례하다보면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다. 2000여 년 전 어떻게 사도 바오로 일행이 이 먼 길을 여행할 수 있었을까? 대부분 걸어서 여행했을 것이다. 사도 바오로의 생애를 묵상할 때 마다 그분의 열정과 깊은 신앙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인간은 두 발로 대지 위에 굳건히 설 수 있다. 또한 몸을 지탱하면서 앞으로 걸을 수 있게 한다. 인간이 밟고 지나간 자리에는 발자국이 남는다.
발은 자유로운 움직임, 자발적 봉사, 겸손, 비천함을 의미한다.
또한 다른 이의 발에 입을 맞추거나 발을 닦아주는 것은 철저한 자기비하나 경의를 의미한다. 로마 성 베드로 성전에서 사도 베드로 성상 발에 입을 맞추며 존경을 표하는 순례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성경 시대에 손님을 환대하는 표시의 하나로 손님의 발을 씻겨 주는 풍습도 있었다.
어떤 이가 집으로 들어가서 발을 씻는다는 것은 그날에는 다시 밖으로 나가지 않음을 의미한다(2사무 11,8).
또한 성경에서 발은 윤리적 생활 방식, 생활태도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하마터면 발이 미끄러지고 걸음을 헛디딜 뻔하였으니…"(시편 73,2).
또한 하느님께서 만물을 인간의 발아래 두셨다는 것은 만물을 인간의 소유로 맡겼다는 의미를 나타낸다(시편 8,6-8).
여호수아는 승리를 확실히 나타내기 위해 붙잡힌 다섯 왕을 자기 앞으로 끌어낸 후 자기와 함께 싸운 지휘관들에게 명령해 패배한 왕들의 목을 발로 밟게 했다.
여기서 발을 밟는 행위는 완전한 승복, 승리를 상징한다. "사람들이 그 임금들을 끌어내어 여호수아에게 데려가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두 불러 모은 다음, 자기와 함께 갔던 병사들을 지휘하는 군관들에게 지시하였다. '가까이 와서 발로 이 임금들의 목을 밟아라.'"(여호 10,24).
그리고 신발을 벗어 맨발을 드러내는 것은 신성한 것에 대한 겸양과 존중의 의미로 행해지는 경우도 있다.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은 모세에게 불떨기의 모습으로 나타나셨는데, 신을 벗으라는 명령을 하신다. "이리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탈출 3,5).
그러나 맨발은 비참함과 굴종을 의미할 때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의 발아래 엎드리는 것은 탄원 행위인 경우도 있다. 그래서 회당장 야이로는 예수님 발아래 엎드려 딸의 병을 고쳐달라고 빌었던 것이다(마르 5,22).
옛날에는 토지나 영토를 취득했을 때 그곳에 발을 놓는 일로 증거를 삼는 법적 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부유한 신자들이 소유를 판 대금을 사도들의 발아래 두었다.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사도 4,35).
또한 발은 심판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래서 복음을 거절하는 곳에서 사도들은 항의의 표시로 발에서 먼지를 털어내었다(사도 13,51).
예수님께서는 종의 행위인 발을 씻김으로 제자들에게 섬기는 모범을 보이셨다(요한 13,2-11). 여기서 발은 비천함의 상징이다.
우리 신체 일부인 발이 이처럼 다양한 상징으로 나타낸다고 하니 신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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