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유다인의 지혜서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나라의 왕이 신하 두명을 불러 서로 정반대 임무를 맡겼다. 한 신하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을, 또 다른 신하에게는 가장 악한 것을 가져오라는 명령이었다. 임무를 맡은 신하들은 온 세상을 두루 돌아본 후에 그 답을 찾아왔다.
그런데 두 신하의 답은 같았다. 그들은 모두 사람의 '혀'라고 답했던 것이다. 왕은 두 신하의 열띤 논쟁을 들어본 후 세상에서 가장 선한 것도 혀요, 가장 악한 것도 혀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혀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선도 악도 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세치 밖에 되지 않는 혀는 온몸을 다스릴 정도로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다. 혀를 통해 만들어 내는 말 한마디는 행복과 불행의 열쇠가 될 정도니 말이다. 무심코 내뱉은 말은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영향을 주듯 살아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혀는 웅변과 함께 거짓말의 상징이기도 하다. 사람이 혀를 내밀 때는 대부분의 민족이 상대에 대한 우롱이나 경멸의 표시로 여겨진다. 그런데 티베트에서는 존경의 인사가 되고,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에게는 환영의 표시가 된다고 한다. 이처럼 지역마다 다른 풍속을 나타내는데 중요한 것은 혀 자체가 감정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혀는 인간의 언어활동 도구다. 혀는 좋은 일에서도 나쁜 일에서도 역할을 한다. 혀는 말을 만들어내기에 일종의 창조 기관으로 간주됐다. 이집트 전설에 의하면 세상은 심장과 혀, 즉 정신의 힘과 창조의 말에 의해 세계를 만들어냈다고 한다. 이집트 사람들은 인간의 행동을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심장과 혀라고 생각했다.
성경에서 혀는 하느님을 찬양하는 언어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죽음의 형벌에서 저를 구하소서, 하느님, 제 구원의 하느님. 제 혀가 당신의 의로움에 환호하오리다" (시편 51,16). 또한 혀는 인간의 생각과 태도를 나타내기에 삶의 태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의인의 혀는 순수한 은과 같지만 악인의 마음은 별 가치가 없다"(잠언 10,20).
인간의 행복은 혀에 달려있다고 단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혀에 죽음과 삶이 달려 있으니 혀를 사랑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는다"(잠언 18,21). 잠언에서 사람은 혀가 만들어낸 말의 열매를 먹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타인과 자신의 상황에 대해 쏟아내는 우리의 말은 결국 자신을 향하게 된다.
또한 사람의 혀가 무서운 무기로 비유되고 있다. "매에 맞으면 자국이 남지만 혀에 맞으면 뼈가 부러진다"(집회 28,17). 그래서 위험한 혀는 독사로 비유된다. "뱀처럼 혀를 벼리고 살무사의 독을 입술 밑에 품습니다"(시편 140,4).
신약에서 야고버 사도는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혀를 삼가라고 권면했다. 아무리 신앙심이 깊어도 혀를 제어할 수 없다면, 그 신앙심은 무의미하다고 가르친다. "누가 스스로 신심이 깊다고 생각하면서도 제 혀에 재갈을 물리지 않아 자기 마음을 속이면, 그 사람의 신심은 헛된 것입니다"(야고 1,26).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성령이 불꽃 모양의 혀로 제자들에게 내렸다고 전해진다(사도 2,3-4). 오순절 성령강림 때에 불꽃 모양의 혀로 나타난 성령의 모습은 중세 회화에서 즐겨 사용했던 주제다. 이처럼 혀는 비언어적인 메시지를 의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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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성경의 '성령강림' 삽화. 사도행전에서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성령이 불꽃 모양의 혀로 성모 마리아와 제자들에게 내렸다고 전해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