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사제서품식 후 새 사제는 부모님에게 첫 안수(按手)를 한다. 내 경우에도 사제서품 미사가 끝난 후 어머니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안수를 청하셨는데 순간 감격에 겨워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던 기억이 난다. 아마 모든 사제들은 이 순간을 평생 기억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옛날부터 손은 축복을 이끄는 신체 부위로 생각했다. 많은 나라 신화에도 안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구원을 가져오고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많다. 특히 이스라엘에서는 종교적으로 거룩한 인물인 예언자, 사제와 하느님의 대리자라고 믿었던 왕의 오른손에는 구원과 치유와 축복의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오늘날 안수는 그리스도교 의식 가운데 하나로 특별한 권한을 부여받고 능력과 자격을 수여하는 상징적 행위로 정착했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에서 안수는 하느님의 성령을 안수 받는 이에게 준다는 뜻을 갖는다.
성경에서 손을 얹어 안수하는 것은 축복을 전달하는 가시적 표현이다. 야곱은 에프라임과 므나쎄 머리에 오른손과 왼손을 얹고 축복했다. "이스라엘은 손을 엇갈리게 내밀어, 에프라임이 작은아들인데도 오른손을 에프라임의 머리에 얹고, 므나쎄가 맏아들인데도 왼손을 므나쎄의 머리에 얹었다"(창세 48,14).
장자권 상속이나 육체의 건강을 기원하면서도 안수를 했다. 그리고 특별한 권한을 부여하거나 직책을 임명할 때도 안수를 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함으로써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공동체 최고지도자로 임명됐다. "주님께서 모세에게 대답하셨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를 데려오너라. 그는 영을 지닌 사람이다. 너는 그에게 네 손을 얹어라'"(민수 27,18).
구약성경은 안수를 통해 죄가 옮겨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레위인들이 황소들 머리에 손을 얹고 나면, 너는 한 마리는 속죄 제물로, 또 한 마리는 번제물로 주님에게 바쳐, 레위인들을 위한 속죄 예식을 거행하여라"(민수 8,12). 이처럼 손을 얹음으로써 죄라는 무거운 짐을 다른 존재에게 떠맡기는 것이다. "아론은 살려 둔 그 숫염소 머리에 두 손을 얹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모든 죄, 곧 그들의 허물과 잘못을 고백하여 그것들을 그 염소 머리에 씌우고서는, 기다리고 있는 사람의 손에 맡겨 광야로 내보낸다"(레위 16,21).
신약성경에서 사도들이 다른 이들에게 성령을 수여할 때도 안수를 했다. "그때에 사도들이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사도 8,17). 또한 안수를 통해 교회의 특별한 직위를 수여했다(사도 6,6). 예수님께서 병자를 치유할 때도 병자에게 손을 얹어 안수를 했다(루카 13,13). 그리고 안수는 축복을 주는 방법으로 사용했다(마태 19,13).
현재 가톨릭교회에서는 세례 지원자에게서 악마를 내쫓을 때, 사죄를 할 때, 병자ㆍ견진ㆍ신품성사 때 안수를 한다. 이때 손을 얹어 기도하는 안수의 동작은 공동체에 대한 봉사를 위한 축성과 거룩한 권능을 전수한다는 표지가 된다.
따라서 안수는 하느님의 성령이 선발된 존재를 세상에서 분리시켜 그에게 직무를 수행할 권위와 능력을 수여하는 것임을 가리킨다. 오늘날 안수의 본질은 직분과 그에 따른 능력의 수여 및 직위 계승의 의미가 강하다. 이러한 의미의 안수는 사제 서품 의식을 통해 잘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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