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기둥은 건물 지붕의 하중을 초석에 전달하는 구조물이다. 기둥은 공간을 형성하는 기본 뼈대가 되는데, 기둥 높이는 건축물 높이를 결정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는 신석기시대 수혈(竪穴) 안 가장자리에 구멍을 파서 세우거나 바닥에 직접 세워 그 윗부분의 구조물을 지탱하게 한 것이 기둥의 시작이라고 한다.
서양의 기둥 형태는 시대와 나라에 따라 다양하다. 이집트에는 기원전 27세기 경부터 이미 훌륭한 돌기둥이 있었다. 이집트 신전에 사용된 기둥은 기둥머리에 꽃봉오리나 파피루스를, 기둥 몸에는 풀잎을, 밑동에는 상형문자 등을 새겨넣은 것이 특징이다. 기둥과 지주, 나무 줄기는 모두 같은 상징적 가치를 지닌다.
집과 우주를 동일시하여 집의 중심에 있는 기둥을 우주의 축으로 보는 민족도 있다. 고대 독일 작센족은 신성한 나무 기둥이 우주를 지탱하는 우주 기둥의 의미를 갖는다고 여겼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헤라클레스의 기둥이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집트의 돌 사각기둥인 오벨리스크는 태양신이 앉는 장소로 간주됐다. 신왕국 이후에는 두 개씩 기둥을 쌍으로 만들어 태양과 달의 상징으로 삼았다. 수메르 사람들은 하늘의 출입구에 심어져 있는 두 그루의 나무를 상징하기 위해 신전 입구에 두 그루의 종려나무를 심거나 두 개의 기둥을 만들었다. 탈무드에 나오는 솔로몬 신전 앞 두 기둥은 태양과 달을 의미하고 있다.
성경에서도 "땅이며 그 모든 주민이 뒤흔들려도 내가 세운 그 기둥들은 굳건히 서 있다"(시편 75,4)는 표현처럼 기둥은 우주의 상징으로 나온다. 또한 하느님은 땅을 바닥째 뒤흔드시어 그 기둥들을 요동치게 하시는 분인데(욥기 9,6), 이는 하느님의 위대한 능력을 나타내는 것이다.
솔로몬이 성전 앞 복도 입구에 세운 두 개의 청동기둥은 특별한 의의를 갖는다(1열왕 7,15-22). 성경의 기둥에는 건물을 지탱하는 기능을 갖는 기둥과 함께 기념비 역할을 하는 기둥도 등장한다. "생전에 압살롬은 '내 이름을 기억해 줄 아들이 없구나.'하며 기념 기둥 하나를 마련하여 세워 두었는데, 그것이 '임금의 골짜기'에 있다. 그가 이 기념 기둥을 자기 이름으로 불렀기에, 오늘날까지도 그것이 '압살롬의 비석'이라 불린다"(2사무 18,18).
또한 하느님은 예레미아 예언자를 기둥에 비유하셨는데 이는 신앙을 지탱하는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너를 요새 성읍으로, 쇠기둥과 청동 벽으로 만들어 온 땅에 맞서게 하고, 유다의 임금들과 대신들과 사제들과 나라 백성에게 맞서게 하겠다"(예레 1,18).
신약성경에는 사도 바오로가 야고보와 케파와 요한을 기둥 같이 여긴다는 표현이 등장한다(갈라 2,9). 이것은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는 어떤 사람이나 조직을 기둥으로 묘사하는 상징적 용법의 단순한 예가 아니다. 이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새로운 성전으로 여겼던 초대교회의 이해와 관련이 있다.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두 개의 기둥은 땅에 기초를 둔 것이 아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신 하느님의 현존은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의 형태를 취하였는데, 그 기둥들은 백성들을 인도하고 길을 밝게 비추어 주었다(탈출 13,21-22). 이처럼 기둥에 대한 성경의 언급들은 거룩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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