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지중해식 요리에는 동물성 지방 함유량이 많다. 그런데도 이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심장 관련 질병 발생률은 낮다고 한다. 그 이유는 유럽인들이 건강식품으로 꼽는 올리브오일을 섭취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에는 올리브기름에 포함된 물질이 적혈구를 보호해 심장병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는 올리브기름 성분이 뇌 속의 치매 유발 단백질을 죽이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발견돼 이 성분으로 치매 백신을 만드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성경시대에도 올리브기름을 다양하게 사용했다. 음식에 많이 쓰였고, 등잔기름, 약, 향수, 비누재료 등 일상용품으로도 많이 사용했다. 또 올리브기름을 신체나 머리에 붓는 기름으로도 사용했다(탈출 29,7). 팔레스티나 지방은 여름에 매우 덥고 건조해 목욕한 뒤에 올리브기름을 몸에 발랐다(2사무 12,20). 먼길을 여행하고 난 뒤 몸에 기름을 바르면 기분이 상쾌해지고 원기가 회복됐다. 그래서 예로부터 올리브기름은 상처를 치료하는데 사용했다.
착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보면 상처에 포도주와 기름을 붓는 장면이 나온다(루카 10,34). 보통 술은 상처를 소독하고 기름은 아픔을 누르는 역할을 한다(이사 1,6).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올리브기름은 단순한 의약품이 아니다. 하느님께서 환자에게 베푸시는 도움을 나타내는 표징이었다. 그래서 예수님 제자들은 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주셨다(마르 6,13).
야고보 사도는 교회 원로들에게 아픈 이를 찾아가서 기름을 붓고 기도해 주라고 권유한다(야고 5,14). "여러분 가운데에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 현재의 병자성사는 이러한 성경 전통을 따른 것이다. 그리고 올리브기름은 시체를 매장하기 전에도 사용했다(루카 23,56).
옛날 사람들도 결혼식 같은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에는 몸단장을 했다. 그럴 때 올리브기름에 향료를 첨가한 향유를 사용했다. 성경에서 특별히 올리브기름을 바르는 것은 기쁨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상중(喪中)에는 기름을 바르지 못했다(2사무 14,2). 또한 주인은 최고 환영의 표시로 손님 머리에 향유를 바르기도 했다(마태 26,7). "어떤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가 든 옥합을 가지고 다가와, 식탁에 앉아 계시는 그분 머리에 향유를 부었다."
손님 발에 기름을 발라주는 것은 헌신과 존경을 상징한다(루카 7,28-46). 또한 특별한 직무를 부여받을 때 축성식에서 올리브기름을 머리에 붓는 의식을 했다. 이처럼 도유는 어떤 사람이나 사물이 세속에서 벗어나 성스럽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왕의 즉위식에서도 대사제가 기름을 바르는 도유식이 가장 중요한 의식이었다. 이처럼 올리브기름은 하느님 생명의 축복과 풍요의 상징이었다.
올리브기름은 성경시대에 연료로도 쓰였다. 등잔은 기름을 많이 담을 수 없어서 불을 오래 밝히려면 '열 처녀의 비유'에서처럼 기름을 여분으로 가지고 있어야 했다(마태 25,1-13). 올리브기름은 전쟁 때 방패에도 발랐는데, 적군의 화살이나 창이 닿으면 미끄러지게 하려는 조치였다. 이래저래 올리브기름은 성경시대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품이었고, 많은 상징적 의미를 내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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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루살렘에 있는 올리브나무 공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