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대한민국 제1호

49년 목포발전소 건립, 50년 폭격으로 소실

namsarang 2010. 3. 10. 22:25

[대한민국 제1호]

49년 목포발전소 건립, 50년 폭격으로 소실

 

이성훈 산업부 에너지담당 기자 inout@chosun.com

 

1948년 5월 14일 북한은 느닷없이 송전(送電)을 중단했다. 당시 수풍수력발전소를 비롯해 대부분의 발전소는 북한에 있었고, 남한은 전력 수요량의 60% 정도를 북한에서 공급받고 있었다. 부족한 전력을 메우기 위해 미국은 1948년 2월 발전함(발전기를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는 선박)인 자코나(Jacona·발전용량 2만㎾)를 부산항에, 1948년 5월에는 발전함 엘렉트라(Electra)를 인천항에 보내 발전을 하기도 했다. 북한으로부터 전기가 들어오지 않자 남한에서는 방송이 중단되고 곳곳에서 가로등이 꺼지는 등 큰 혼란을 겪어야 했다.

남한 정부는 즉시 발전소 건설에 착수했다. 민간기업이던 남선전기주식회사가 1948년 12월 원조자금으로 목포에 화력발전소를 지었다. 6개월여 공사 끝에 1949년 '목포 중유발전소'가 완공됐다. 정부 수립 이후 첫 발전소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목포 중유발전소는 5000㎾ 용량으로 1000㎾ 발전기 5대로 구성돼 있었다. 지금으로 보면 약 2000가구 정도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소규모 발전소였다.

일제시대에 지어진 영월발전소. 6·25전쟁 중 폭격으로 피해와 복구를 반복해야 했다. 2007년 해체된 후 현재 다시 짓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1호 발전기'의 운명은 기구했다.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24일 폭격으로 완전히 소실되고 말았다. 목포 중유발전소는 14개월 동안 1944만8768㎾h의 전력을 생산, 전력난 해소에 톡톡히 한몫했다. 전쟁으로 목포 중유발전소뿐 아니라 영월발전소와 당인리발전소 등 남한 내 발전소도 폭격으로 피해와 복구를 반복하며 근근이 전력을 생산했다. 1950년대에 마산화력발전소와 삼척화력발전소 등을 건설했지만, 전력난은 여전했다. 정부는 궁여지책으로 배전선을 상시용과 야간용, 주간용으로 나누어 3부제로 전력을 공급했다.

발전소 건설은 산업화가 추진된 196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민간 발전사인 조선전업과 남선전기, 경성전기가 1961년 7월 합쳐져 한국전력주식회사가 탄생했다. 이후 섬진강수력발전소 2호기와 춘천수력발전소를 잇달아 건설했다. 그 결과 1964년 4월에 해방 이후 처음으로 제한송전이 사라졌다. 그리고 7년여의 공사 끝에 1978년 4월 고리원자력 1호기가 완공되며 원전 시대를 열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으로 가장 품질이 좋고 값싼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원자력발전소 1772만kW(20기)를 비롯해 석탄화력발전소 2421만㎾, 가스화력발전소 1836만㎾, 수력발전소 551만㎾ 등 총 발전설비 용량 7347만㎾(자가설비 제외)를 확보하고 있다. 1961년 한국전력 출범 당시 총 발전설비 36만7000㎾와 비교하면 200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