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대한민국 제1호

6·25 직후 이근석 대령 첫 출격서 산화

namsarang 2010. 3. 14. 19:37

[대한민국 제1호]

6·25 직후 이근석 대령 첫 출격서 산화

 

 

전투기 조종사

1950년 6월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우리 공군엔 전투기가 없었다. 1949년 10월 창설된 뒤 L-4, L-5, T-6 등 연락기와 정찰기 30여대만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항공기로 남하하는 북한군 T-34 전차를 막을 수 없었던 군 당국은 1950년 6월 26일 이근석 대령을 비롯한 10명의 조종사를 일본 이다쓰케 기지에 급파했다. 미 극동공군으로부터 F-51 무스탕 전투기를 인수받기 위해서였다. 체계적인 교육훈련도 받지 못한 채 1950년 7월 2일 10명의 조종사들은 10대의 F-51 전투기를 직접 조종해 현해탄을 건너왔다. 우리나라 첫 공군 전투기 조종사들이 탄생한 것이다. 이들 10명은 이 대령 외에 김영환 중령, 김신 중령, 장성환 중령, 강호륜 대위, 박희동 대위, 김성룡 중위, 정영진 중위, 이상수 중위, 장동출 중위 등이다. 김신 중령은 백범(白凡) 김구 선생의 아들이다.

                                   ▲ F-51 인수조종사 10명.

급박한 전황 때문에 이들은 도착 이튿날인 7월 3일 북한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첫 출격을 감행했다. 이날 대구기지에서 첫 출격한 이근석 대령은 안타깝게도 안양 상공에서 적 대공포에 맞았다. 이 대령은 "3번기 왼쪽 탄약차량 공격, 건투를 빈다"는 마지막 명령을 내린 뒤 북한군 전차로 돌진해 산화, 첫 전투기 조종사 전사자로 기록됐다. 이 대령에겐 최고의 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이 추서됐다. 공군은 2008년 7월 3일 전투기 첫 출격을 기념해 이날을 '조종사의 날'로 선포했다.

6·25전쟁 중 공군 주력 전투기로 활약한 F-51은 프로펠러로 움직이는 터보 프롭 항공기였다. 공군은 종전(終戰) 후인 1955년 6월 F-86 세이버를 처음으로 도입, 제트 전투기시대를 열었다. 1965년 4월엔 F-5A/B를 도입, 초음속 전투기시대를 맞았다. 1969년 8월엔 당시로서는 최신예기였던 F-4 D 팬텀이 도입됐다. 세계에서 네번째로 동북아 최강의 전투기였다. 이는 1968년 1·21 청와대 기습사건 이후 우리 정부와 군이 기존의 F-5A로는 북한의 MIG-21을 제압할 수 없다며 미국측에 F-4D 도입을 집요하게 요구한 성과였다. 1977년엔 F-4D보다 신형인 F-4E 전폭기가 도입됐다.

1982년 9월 공군은 국내에서 조립 생산된 KF-5E/F 제공호를 도입, 처음으로 국산 초음속 전투기시대를 열게 됐다. 1994년엔 F-16 전투기를 국내에서 기술 도입 생산한 KF-16 이 도입돼 KF-16 시대가 열렸다. 이어 2005년엔 우리 공군이 보유한 전투기 중 가장 강력한 F-15K가 도입되기 시작했다. 현재 F-15K는 39대가 배치돼 있다. 신형 전투기의 도입에 따라 조종사 양성비용도 크게 늘어나 엄청난 비용이 든다. 공군 주력 전투기인 KF-16 교관급 조종사를 양성하는 데 1인당 123억원의 돈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