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성지

옥천성당

namsarang 2010. 3. 24. 16:23

청주교구 옥천성당

 

 

 

1950년대 충북 성당으로 유일한 가치... 고딕식 성당 모태 라틴십자형 벽돌조성당으로 증축...

올해로 설립 101돌 맞는 신앙의 옥토 

 

 

                                                레지오 주회합을 마친 신자들이 낮 12시 삼종기도를 바치고 있다. 가을 볕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선 100년 성당인 옥천성당이 아늑한 신앙적 분위기를 연출한다.

 

 

옥천성당 수호자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소화 데레사)다.  성녀는 본당

언덕에서 풍요로운 땅 '옥천'을 내려다보며 복음화를 위한 기도의 작은 꽃을 피운다.

 

 

 

       옛 성당 감실과 제대, 교리문답서, 제의, 유화 십자가의 길 14처 등 신앙유산이 옥천성당 유물전시관에 빼곡히 전시돼 있다.

 

 

 

      김문영 바오로 옥천본당 100주년사 편찬위원이 본당 내 유물전시관에 소장된 유화 십자가의 길 14처를 가리키며 설명을 해주고 있다.

 

  

 

 

 

 

 

 

 

 

 

 

 

 

 

 

 

 

 

 

 

 

 

 

 

 

 

 

 

 

 

 

 

 

 

 

 

 

 

 

 

 

   옥천성당 정원에는 아기자기하게 만든 항아리에 작은 야생화가 군데군데 숨어 있어

   철따라 형형색색 예쁜 꽃을 피워낸다.

 

 

 

   시 '향수'로 국민시인이 된 정지용(프란치스코, 1902~?)의 고향 옥천(沃川). 그 비옥한 들녘에 국내에 몇 안 되는 '100년 성당'이 있다. 1906년 본당으로 설정돼 충북 남부 3군과 청주ㆍ대전 교회, 특히 대전본당(현 대흥동주교좌본당)의 모태가 된 옥천본당(주임 곽동철 신부)이다.

 '신앙의 옥토(沃土)'를 일궈가는 옥천성당은 특히 가톨릭교회 근대문화유산 19건 가운데 제일 먼저 2002년 2월 28일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 제7호로 지정된 교회사적이어서 각별하다.

 올해 설립 101주년을 맞은 옥천성당은 그리 잘 알려진 곳이 아니다. 교회 건축미도 그리 빼어나지 않다. 6ㆍ25전쟁 직후 3년 만에 지었으니 현대 교회건축에 가깝다. 하지만 지용의 문학적 향기가 밴 옥천을 끌어안은 듯한 풍광이나 성당 정원의 정취는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옥천이 신앙의 불모지에서 옥토로 바뀌어가는 여정에는 청주 출신 첫 사제이자 한국천주교회 10번째 사제인 홍병철(루카, 1874~1913) 초대 주임신부가 그 중심에 있다. 페낭신학교, 서울 용산 예수성심신학교를 거쳐 1899년 사제품을 받은 홍 신부는 1906년 5월 옥천본당에 부임, 1913년 40살에 선종하기까지 본당의 초석을 놓았다. 사목자로서 '가난'의 영성을 실천했고, 「사사성경(四史聖經)」 번역에 참여했으며, 천주가사 발굴에도 열심이었다. 기도서인 「성가첨례 찬미경」도 집필했다.

 홍 신부가 1906년 옥천읍 이문동에 세운 15칸 규모 한옥 성당 겸 사제관이나 1909년 옥천읍 죽향리 154번지에 세운 72.7㎡ 규모 한옥성당은 이제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홍 신부 사후 공소 격하(1914년), 본당 승격(1928), 공소 격하(1943년) 등 우여곡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1948년에 다시 본당으로 승격하면서 김영근(7대 주임) 신부는 그해 7월 일제가 신사터 기반공사를 하다 포기한 현 삼양리 부지를 매입, 85.6㎡ 규모 구 성당을 신축했다. 이 성당은 현 성당 신축 이후 성모의원으로 쓰여지다가 1972년 철거됐다.

 현 성당은 1956년 8대 주임 로이 페티프렌(메리놀외방전교회) 신부가 지은 유사 고딕식 성당이 모태다. 건립 이후 종탑 상부 첨탑 마감재를 함석에서 기와로 바꾸고 주출입문을 교체하는 등 변모를 거쳐 1991년 장방형 성당을 라틴십자형으로 증축해 현재에 이른다. 지상 1층(종탑부 3층)에 건축연면적 698.17㎡, 철근콘크리트 벽돌조적조 성당이다.

 문화재청은 옥천성당에 대한 실측조사보고서를 통해 "1950년대에 지은 충북 성당 건축물로는 유일할 뿐 아니라 해방 이후 지방 성당의 전형적 형태이며 교회건축의 변화과정을 살피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한다.

 눈여겨보지 않으면 잘 드러나지 않는 들꽃에 둘러싸인 아담한 성당 외관도 아름답지만 성당 내 전례공간 또한 아늑하다. 나지막한 장방형 천장에 50년대에 프랑스에서 수입한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주제 유리화로 둘러싼 제대, 유물 전시공간, 신자석 등이 한데 어우러지는 신앙적 향기가 은은하다.

 1956년 신축 당시 들여온 프랑스제 종은 아직도 청아하게 울려 펴져 '아름다운 종소리'로 명성이 높다.

 특히 100년 성당 발자취를 함축하는 제대 왼쪽 유물전시공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별도 유물관이 마련됐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지만, 그래도 소규모나마 신앙 유산들이 보존되고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성당 내 전시 유물은 옛 교리문답집, 구 성당 감실ㆍ종ㆍ십자고상, 옛 공소 제대, 윤예원(3대 주임) 신부가 쓰던 가죽 털모자, 본당 전ㆍ현 수호자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유해가 들어있을 것으로 추정하는 제대 성석(聖石), 유화로 제작한 십자가의 길 14처 등을 망라한다. 초기 감실과 성상, 성화, 14처, 교리서 등을 지금과 견줘 그 조형적 차이나 신앙적 숨결을 느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성당을 나서면 은은한 '가을의 몸짓'을 엿볼 수 있는 오밀조밀한 정원이 나온다. 최봉자(영원한 도움의 성모수도회) 수녀가 제작한 성모상과 십자가의 길은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소나무와 어우러져 편안한 기도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하지만 정작 마음을 사로잡은 건 투박한 항아리 옆면을 십자가 문양으로 잘라내거나 반으로 절단해 야생화 화분을 넣어둔 공동체의 투박한 솜씨다. 철따라 제각기 형형색색의 꽃을 피워내는 야생화를 심은 조경 솜씨도 탁월하다. 볕 좋은 날 오후 가을볕이 환히 드는 정원에서 기도하는 신자들을 보면 영혼의 쉼터 같다.

 정원을 둘러싸고 사제관과 드넓은 성당 마당 겸 주차장, 소화 데레사(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교육회관, 강당, 소화어린이집 등이 돌아가며 나타난다. 특히 교육회관 겸 수녀원에는 본당 수호자인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소화 데레사) 관련 흑백 사진과 그림이 100여 점이나 전시돼 본당 수호자의 의미를 신자들에게 깨우쳐주고 있다.

 최근 들어 홍병철 신부 묘역 정비를 마무리한 옥천본당은 옥천군측과 협력, 내년 봄 6000만 원을 들여 성당 지붕을 원형대로 기와에서 함석(철판)으로 바꾼다. 또 지난해에 펴내지 못한 본당 100주년사 편찬작업도 한창이다.

 곽동철 주임신부는 "100주년을 넘긴 공동체인 만큼 서로 화해와 용서를 통해 겸허하고 넓은 마음으로 지역사회에 빛이 되는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성당에서 차량으로 2~3분이면 닿는 정지용 시인 생가를 볼 수 있는 건 덤이다. 옥천읍 하계리 생가에는 1996년 원형대로 복원한 초가 형태 생가와 '향수' 시비, 실개천, 정지용 문학관 선구적 '가톨릭 시인'으로 살다간 시인의 문학적 발자취를 꼼꼼히 볼 수 있다. 시인의 고향 옥천은 이제 200주년을 향해 복음화의 큰 걸음을 내딛고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 사진=전대식 기자 jfa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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