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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8년 8월 27일 방유룡 신부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녀들에게 종신서원 반지를 수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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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유룡 신부가 1960년 10월 27일 서울 청파동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수녀원에서 자신의 사제수품 30주년 및 회갑 기념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
2006년 4월, 한국순교복자수녀회는 설립 60돌을 맞는다. 사람으로 치면, 환갑을 맞은 수녀회는 설립자이자 한국천주교회가 낳은 영성의 큰 스승 방유룡 신부를 기억하고자 소책자를 엮었다. 그 책이 방 신부 영적 어록인 「영혼의 빛」 가운데서 가려 묶은 「면형의 길」이라는 책으로, 손 안에 쏙 들어오는 포켓북(10.5×15㎝)에 109쪽 분량으로 방 신부 단상과 명언의 고갱이를 담았다.
그 안에 방 신부 영성을 깊이 맛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 "무아(無我)는 무사(無邪)ㆍ무욕(無慾)이니 제 자신을 텅 비움일세. 주님은 내리시고 내리셨네. 물과 같이 내리셨네. 그분은 무가 좋으시어 면형(麵形)으로 가셨네. 우리도 무로 가세. 무가 바로 면형일세."(「영가」 87ㆍ88 중에서)
독실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정동관립보통학교에 들어가 15살까지 한학을 익힌 이력을 반영하듯, 방 신부는 동양적 정신문화를 그리스도 영성으로까지 고양시킨다.
그리스도처럼 오직 아버지 뜻만은 이루고자 절대적 자기 비움의 길, 자아 부정의 길인 침묵 속의 여정을 걷고자 했던 방 신부의 영성은 '면형무아'라는 한 마디에 집약돼 있다. 성체성사에서 밀떡이 자기 실체를 지우고 그 형상으로 그리스도를 모시는 것에 비유되는 면형무아는 하느님 강생과 십자가상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를 통한 하느님의 자기 비움과 성체 신비 안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무화(無化)를 철저히 살아내는 무아의 영성, 비움의 영성이다.
이같은 면형무아의 영성은 국내 신학계에서 "토착화된 순교 영성의 정수를 보여준다"는 평을 들었다. "자기부정과 천인합일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전통적 종교 심성이 그리스도교를 만나 새로운 꽃을 피웠다"는 평가다.
특히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장 심상태 신부는 2002년 발간된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이유남 수녀의 저서 「한국인의 종교심성과 면형무아」 추천사를 통해 "면형무아의 영성은 그리스도교 영성의 모든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으면서도 한국인의 정서와 언어에 적합하게 표현돼 있다"며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같은 영성은 한국순교복자 수도 대가족의 첫 출발인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설립 시점에서 방 신부가 갖고 있던 네 가지 생각에서 비롯된다. 우선 △한국 순교자들 후예로서 무엇보다 순교 영성을 계승해야 하고 그들의 순교 덕행을 수덕 원칙으로 삼아야 하며 △하느님 사랑으로 한민족을 성화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을 성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한국의 영적 유산을 존중하고 계발하며 △한국적이고 동양적인 문화와 철학, 종교 전통에 대해 계속 연구하고 보존 육성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방 신부에게서 수도회 설립은 하느님께서 그 역사의 시원에서부터 이 민족을 당신께로 끌어당기고 구원하기 위해 마련해준 영적 특성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하고 수렴한다는 것을 의미했던 것이다.
그러기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또 겨레를 사랑했던 그는 한국 역사와 문화, 종교, 철학의 모든 전통을 품어 안으면서도 그리스도의 신비와 사랑의 눈으로 역사의 시ㆍ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만의 영적, 수덕적, 신비적 길을 헤쳐 나갔다.
방 신부는 하느님을 향한 수덕생활의 출발이자 기초를 '점성(點性)'정신에 뒀다. 순간은 영원에 닿아 있고 범사가 일생을 형성하기에 하느님 안에 늘 깨어 있으면서 빈틈없이 순간을 성화하는 점성정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으며, 점성정신에 '알뜰하게'와 '빈틈없이', '규모있게', '정성스럽게'라는 네 가지 행동 지침을 덧붙였다.
또 방 신부는 하느님을 모시기 위해 자신을 비우고 정화하려면 욕(慾)을 끊고 하느님이 아닌 일체의 것에서 벗어나 어떻게 안팎으로 침묵해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며 무아의 길을 몸소 삶의 모범과 가르침으로 보여줬다. 이것이 바로 침묵 영성이다.
이어 점성과 침묵 생활을 통해 하느님 빛을 받고 하느님과 친교를 맺으며 하느님 사랑에 점점 더 몰입되는 관상적 삶, 곧 대월(對越)의 영성을 강조했다.
늘 깨어있어 일상의 모든 순간을 완전하게 하는 점성에서 출발, 자신을 비우고 정화함으로써 하느님 안에 사랑으로 몰입되는 침묵과 대월의 삶을 통해 하느님과 합일되는 것이 영성생활의 정점이자 완성인 면형무아라고 방 신부는 가르쳤다.
한국적 정신문화라는 토대에서 비롯된 방 신부의 영성은 1960년대를 전후해 동시대 청년들에게 번져가기도 했다. 김규영 전 서강대 교수, 박희진ㆍ성찬경 시인, 진교훈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당시 방 신부와 영적 모임을 갖던 이들로, 이 모임은 1976년 1월 방 신부 건강이 악화돼 중단되기까지 9년간 지속됐다.
이처럼 하느님 뜻을 이루려 사랑의 불이 된 방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탔다. 30년간 수도생활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영성생활 체계를 확립하고 수행의 길을 걸어갔으며, 1986년 1월 24일 서울 성북동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원에서 86살을 일기로 선종함으로써 그가 그리도 그리워한 하느님 품에 안겼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사진제공=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한국순교복자수녀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