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성인

성 빈첸시오 페레르(St. Vincencio. Ferrer 축일 4월 5일)

namsarang 2010. 4. 5. 17:10

 

성 빈첸시오 페레르(St. Vincencio. Ferrer 축일 4월 5일)

1350-1419년 스페인 발렌사 출생, 사제, 설교가 증거자 

 



    1350년 스페인 발렌시아(Valencia) 태생인 성 빈첸시오 페레리우스(Vincentius Ferrerius, 또는 빈첸시오 페레리오)는 귀족인 빌리암 페레리우스와 콘스탄스 미구엘의 아들로 태어났고, 1367년에 도미니코 회원이 되었다. 그는 학업을 계속하기 위하여 바르셀로나(Barcelona)로 갔으며, 불과 20세의 나이로 레리다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특히 그의 설교가 뛰어났는데, 유대인과 모슬렘 사이에서도 좋은 평판을 들었다.

   1378년부터 서방교회를 진동시킨 교황 논쟁에서 성 빈첸시오는 아비뇽(Avignon)으로 가서 루나의 베드로(Petrus, 베네딕투스 13세) 추기경을 적극 지원하고 그의 고문 겸 고해신부가 되었다. 1399년 성 빈첸시오는 아비뇽을 떠나 10여 년 동안이나 프랑스, 스페인 등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설교하였다. 그의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큰 감명을 받았고 개종자의 무리가 마치 군대의 행진처럼 무리지어 나왔다고 한다.

   이즈음에 그는 성 도미니코(Dominicus)와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를 대동하신 그리스도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것은 자신이 더욱 설교에 열심하라는 뜻이라고 해석하였다. 그의 개종자 가운데에는 시에나(Siena)의 베르나디네와 사보이아(Savoia)의 마르가리타(Margarita, 11월 23일)가 매우 유명하다.

   그는 그 나라말을 모르는 지역에서도 설교하여 큰 성공을 거둠으로써 ‘말씀의 은혜’를 받았다고 많은 사람들이 믿었다. 또 이에 따르는 수많은 기적들 때문에 ‘기적을 행하는 사람’이란 별명도 얻었다. 1416년 그는 아라곤(Aragun)의 페르디난도 왕처럼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대한 지지를 철회함으로써 교황 논쟁의 종지부를 찍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성 빈첸시오는 사망하기 3년 전부터 프랑스 여러 지방을 순회하며 설교하던 중 브르타뉴(Bretagne)의 반(Vannes)에서 1419년 운명하였다. 그는 1455년에 시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