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들과 정주고 살면서 깨끗하게 늙는 일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스무 살 시절, 절세가인인 내 후배가 우울증을 앓았다. 나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저렇게 예쁜 애가, 저렇게 쭉 빠진
애가 뭐가 부족해서 우울하단 말인가. 20대는 외모 하나만으로도
삶의 희열을 느낄 수 있는 마술같은 세대. 거리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일,아주 일차원적인 것이어도 그 시절엔 그게 희열이 될 수
있다. 우울증을 앓는 절세가인 후배가 어느 날 나에게 말했다.
"언니, 나는 70세 된 할머니가 부러워. 어떤 할머니가 손자를
업고 환하게 웃는데 그게 어찌나 부럽던지. 저 할머니는 그 많은
시간을 무사히 다 넘기고 지금 저 자리에서 행복한 거잖아.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나보다 네 살 적은 후배가 하는 얘기를
나는 그때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 20대면서도 한살 더 먹어서 큰일 났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언젠가부터 후배의 얘기가 명언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당당한 아름다움을 내뿜는 분들이 있다. "난 정말 열심히
살았고, 그 때 내가 한 일이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분들. 젊은
시절 후회없이 살았고, 노년도 후회없이 살고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까지는 안되더라도, 젊은 날 덧없이 산 것을 반성하면서
남은 인생이나마 보람있게 살겠다고, 결심할 기회를 갖는 것,
그것도 행운이다.
인생길 돌다, 돌아가는 길목에서 느닷없이 복병을 만나, 그만
끝까지 갈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 그런 사람들의 얘기를 들으면
가슴이 저린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지냈습니다" 이 말은 매 주일 우리 교회에서
결신 (決信)하는 사람들이 따라하는 기도문이다.
어디에서 왔고,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 보람있게
사는 일,거기에 종착역까지 가는 티켓이 보장되어 있다면
, 그야말로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잘살았건 못살았건,
평화로운 노년을 체험하는 것도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잘 살면, 나이 드는게 자랑스러운
일이라는 것, 그걸 슬슬 깨달아가고 있으니,
이제 철이 좀 드는 걸까?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에게
정주고 살면서 깨끗하게 늙는 행운이 찾아오길---
※ 이 글은 소설가이며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이근미 씨가 일간지에 기고한 칼럼내용으로, 임영조 시인이
쓴“도꼬마리 씨 하나”라는 제목의 시를 읽고 느낀 소감을
적은 글을, 일부 요약한 것입니다. 우리들이 인생을 살면서
타인에게 얼마나 정을 주고 살았으며, 깨끗하게 늙어 가고
있는 것인지, 서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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