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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들아, 바다 백합으로 피어나렴

namsarang 2010. 4. 25. 19:46

[특별기고]

 

아들들아, 바다 백합으로 피어나렴


천안함 침몰사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며-수필가 이정원   
 

▲ 수필가 이정원(체칠리아)
 
   아들들아.

 차라리 그 바닷속을 몰랐더라면 이보다는 덜 가슴이 저렸을까.

 스쿠버 다이빙을 하며 딱 한 번 들어가 보았던 서해의 물속은 말로 듣던 것보다 훨씬 어둠침침해서 두렵기까지 했지. 뻘로 된 바닥에서 일어나는 부유물은 코앞에 손가락을 갖다 대야 겨우 보일 정도로 시야를 흐리게 했고. 조류는 또 얼마나 센지, 마주 보며 입수한 다이버가 떠오른 뒤에 보니 저만치 아주 저만치 가 있더구나.

 한데 하필이면 그런 바닷속으로 너희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서 '어쩌나, 우리 아들들을 어쩌나' 하며 떨리는 손만 부여잡고 밤을 밝혔단다. 입술 마르는 하루하루가 가고, 너희들 목숨의 한계 시간이 넘으면서부터는 어떠했는 줄 아니.

 숨진 너희들이 엎드려 있거나 누워 있거나 두팔 벌리고 떠있을지도 모를 바닷속 그 배 안이 자꾸 보이는 것만 같아서 견디기가 힘들었지. 비스듬히 가라앉아 있던 난파선 내부에 들어가 보았던 기억, 그 기억이 이번에는 또 너희들이 갇혀 있을 배 안의 상황과 겹쳐지며 가슴을 파는 거였단다.

 난파선의 복도를 헤엄쳐 통과할 때 들었던, 처음에는 두런거리는 말소리였다가 차츰 살려달라는 아우성으로 바뀌어가던 그 소리들. 게다가 선실 창문 밖의 바닷물이 갑자기 하늘로 보여지면서 선뜩 다가오던, 아직도 이 방에는 뭍의 삶을 향한 누군가의 소망이 자리잡고 있구나 했던 느낌.

 너희들도 그랬겠지, 정녕 너희들도 그러했겠지. 이십 일을 어두운 바닷속 배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선실 창문으로 보이는 바닷물을 하늘빛으로 여겨 결코 눈 감지 않고 버텼겠지. 가슴 무너지는 어미들의 간구로도 그런 너희를 구하지 못했구나.

 나라의 안위를 위해 목숨을 바친 너희들의 선한 얼굴 하나하나를 더듬으며, 젊은 날 이 땅을 지키려 싸우셨던 팔순 노병의 내 아버지 눈가에도 눈물이 맺히더구나. 군악병이던 아들은 너희가 떠나는 날 울려 퍼질 슬픈 트럼팻 소리가 들리는지 눈을 질끈 감고는 고개를 돌리고.

 이제 어찌하면 좋으냐. 화사해야 할 사월 벚꽃은 벌써 저리 빛을 잃고 있는데. 너희들을 한 줌 재로 묻어야 하는 날은 이 땅 온 어미들의 눈물비에 젖어 그 흐린 꽃잎마저 자취를 감추고 말테니.

 그러나 아들들아.

 그리 아깝고 귀한 목숨이니,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배가 들어 올려져 너희가 우리 곁으로 돌아온 그 순간에 이미 너희의 영혼은 빛에 싸여 하늘로 가지 않았을까. 하느님의 정원에서 천국의 백합이란 이름을 달고 피어나 향기를 내뿜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 어쩌면, 그토록 바다를 사랑해 마지막 숨과 눈빛마저 바닷속 배 안에 남긴 너희들이니 아주 깊은 바다에서만 산다는 바다백합으로 피어나겠다 고집을 부리지는 않을지. 그 꽃으로 화하거든 기필코 서해로 돌아와, 어둠으로 출렁이며 너희를 바닥에서마저 구르게 했던 그 바다를 오히려 위무해주렴.

 어느 날 서해의 흐린 바닷속에, 맑은 심연에서만 핀다는 그 바다백합이 만발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거든 마흔 여섯 너희들 영혼의 화신이 다니러 온 줄로 여기마.

 어미들의 저린 가슴에 하늘의 빛을 나누어 주러 온 줄로 여기며 눈물을 거두마.
평화신문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