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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캥거루에도 밀린 '아버지'라는 이름

namsarang 2010. 5. 8. 21:14

[어버이 날 ESSAY]

호박, 캥거루에도 밀린 '아버지'라는 이름

  • 양 승 윤 한국외대 교수

교수는 왜 하느냐 처자식 굶긴다 아버지는 내게 그러면서
가난해야 학자가 된다고 내 아내에겐 이르셨다
아름다운 영어 단어 중 70위에도 끼지 못하는 아버지란 단어
쓸쓸한 남자의 이름이다
아버지는 아침마다 머리 셋 달린 괴물과 싸우러 나간다
피로와 끝없는 일 그리고 스트레스다
오늘 아버지가 보고프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산문시 '아버지는 누구인가'가 있다. 인터넷을 통해 퍼져 사이버 공간을 눈물로 적시는 글이지만 그 시인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를 이을춘(李乙春) 시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름을 감춘' 시인의 약자다. 이을춘 시인이 말했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싶은/ 사람이다.'

나는 중1 때 같은 동급생의 가정교사로 들어갔다. 이 친구는 가끔 엉뚱한 장난을 했다.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서 고무줄 새총을 날린 뒤 내 뒤로 숨어 나를 앞으로 밀어내곤 했다. 변명도 못하고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죄인 대역을 몇 번인가 하던 끝에 보따리를 쌌다. 열 식구가 서로 몸을 누이기도 비좁은 작은 셋집, 우리 집에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나를 나무라셨다. "왜 좀 참고 더 있잖고…." 그때부터 아버지가 미웠다.

"교수는 왜 하려고 하느냐? 처자식 굶긴다." 오랜 맘고생 끝에 겨우 교수가 됐을 때도 그러셨다. 그러는 아버지도 교수였다. 그 옛날에는 쌀 한 가마니가 한 달치 봉급의 전부였다. "아비 못된 것을 빼다 박은 네가 무슨 학문을 하겠느냐. 제자들에게 술이나 열심히 사줘라."

그 말씀이 싫어서 교수 자식은 대꾸도 안했다. 아버지는 그러나 내 아내한테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학자는 가난하다. 가난해야 학자가 된다.""사람의 일이란 넘치면 부족하느니만 못하다." 그 말을 새긴 것인지, 아내는 시집와서 25년간 불평 한 마디가 없었다. 한때 생활비에도 미치지 못하던 얇은 월급봉투를 받아들고서도 그랬다. 아버지는 그렇게 시원찮은 자식과 며느리에게 학문과 제자라는 교수의 두 길을 가르치셨다.

아버지의 소리가 아무리 싫어도 결국 자식은 그대로 따라가는가 보다. '제자들에게 술이나 열심히 사라'는 말씀대로 한 덕인지 이제는 어딜 가나 제자들이 있다. 제자들은 나를 대접하고는 "교수님께서 옛날에 배고플 때마다 사주신 자장면과 생맥주가 그렇게 맛있었어요"라고 한다. 아내는 "당신은 참 부자야, 어디를 가나 제자들이 있잖아"라고 한다.

40대 책 외판원이 대학 강의실까지 책 팔러 들어오기에 한마디 했다. "강의실까지 들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책을 모아 옆구리에 낀 채 밖으로 나갔다. 학교 테니스장 앞 벤치는 늘 그 친구 차지였다. 나만 보면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그게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도 누군가의 아버지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아버지는 그 벤치밖에 마땅히 있을 자리가 없었다. 이을춘 시인은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사람이다'라고 했다. 그 아버지도 울 장소를 찾지 못했던 것일까. 그가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아프다.

일러스트=오어진 기자 polpm@chosun.com
2004년 영국문화원은 개원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영어를 쓰지 않는 102개국 4만 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영어 단어'를 물었다. 1위는 단연 어머니(mother)였다. 2위는 열정(passion)이었고, 3위와 4위는 각각 미소(smile)와 사랑(love)이었다. 1위에서 70위까지 매긴 맨 끝 순위에도 아버지는 끼지 못했다. 호박(40위), 바나나(41위), 우산(49), 캥거루(50위)만도 못한 것이 '아버지'라는 이름의 남자들이다. 102개국 비영어권에는 우리나라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구조조정과 계약직 전환을 결사반대하는 데모대의 앞장에 서야 한다. 머리도 밀고, 때로는 구사대(救社隊)가 되어 밤샘도 해야 한다. 아버지는 쓴 소주를 들이켜고 잠시 눈을 붙이러 집에 왔다가 무언가에 쫓겨 또다시 새벽길을 서둘러 떠나야 한다.

이을춘 시인은 이 시대의 모든 아버지를 대신해 그 이유를 말한다. 아니 토해낸다. '아버지는/ 결코/ 무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가는 장소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 아버지는/ 머리가/ 셋달린 괴물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스트레스다.'라고 했다.

내 아버지도 그러셨다. 배고파 하는 많은 자식들과 고생하는 아내와 학자의 길 한가운데서 방황하셨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느덧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늙은 자식은 오늘 아버지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