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는 왜 하느냐 처자식 굶긴다 아버지는 내게 그러면서
가난해야 학자가 된다고 내 아내에겐 이르셨다
아름다운 영어 단어 중 70위에도 끼지 못하는 아버지란 단어
쓸쓸한 남자의 이름이다
아버지는 아침마다 머리 셋 달린 괴물과 싸우러 나간다
피로와 끝없는 일 그리고 스트레스다
오늘 아버지가 보고프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산문시 '아버지는 누구인가'가 있다. 인터넷을 통해 퍼져 사이버 공간을 눈물로 적시는 글이지만 그 시인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른다. 나는 그를 이을춘(李乙春) 시인으로 부르기로 했다. '이름을 감춘' 시인의 약자다. 이을춘 시인이 말했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후에야/ 보고싶은/ 사람이다.'나는 중1 때 같은 동급생의 가정교사로 들어갔다. 이 친구는 가끔 엉뚱한 장난을 했다. 지나가는 사람을 향해서 고무줄 새총을 날린 뒤 내 뒤로 숨어 나를 앞으로 밀어내곤 했다. 변명도 못하고 여기저기 끌려 다니며 죄인 대역을 몇 번인가 하던 끝에 보따리를 쌌다. 열 식구가 서로 몸을 누이기도 비좁은 작은 셋집, 우리 집에 들어섰을 때 아버지는 나를 나무라셨다. "왜 좀 참고 더 있잖고…." 그때부터 아버지가 미웠다.
"교수는 왜 하려고 하느냐? 처자식 굶긴다." 오랜 맘고생 끝에 겨우 교수가 됐을 때도 그러셨다. 그러는 아버지도 교수였다. 그 옛날에는 쌀 한 가마니가 한 달치 봉급의 전부였다. "아비 못된 것을 빼다 박은 네가 무슨 학문을 하겠느냐. 제자들에게 술이나 열심히 사줘라."
그 말씀이 싫어서 교수 자식은 대꾸도 안했다. 아버지는 그러나 내 아내한테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학자는 가난하다. 가난해야 학자가 된다.""사람의 일이란 넘치면 부족하느니만 못하다." 그 말을 새긴 것인지, 아내는 시집와서 25년간 불평 한 마디가 없었다. 한때 생활비에도 미치지 못하던 얇은 월급봉투를 받아들고서도 그랬다. 아버지는 그렇게 시원찮은 자식과 며느리에게 학문과 제자라는 교수의 두 길을 가르치셨다.
아버지의 소리가 아무리 싫어도 결국 자식은 그대로 따라가는가 보다. '제자들에게 술이나 열심히 사라'는 말씀대로 한 덕인지 이제는 어딜 가나 제자들이 있다. 제자들은 나를 대접하고는 "교수님께서 옛날에 배고플 때마다 사주신 자장면과 생맥주가 그렇게 맛있었어요"라고 한다. 아내는 "당신은 참 부자야, 어디를 가나 제자들이 있잖아"라고 한다.
40대 책 외판원이 대학 강의실까지 책 팔러 들어오기에 한마디 했다. "강의실까지 들어오면 어떻게 합니까." 그는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책을 모아 옆구리에 낀 채 밖으로 나갔다. 학교 테니스장 앞 벤치는 늘 그 친구 차지였다. 나만 보면 일어나 꾸벅 인사를 했다. 그게 벌써 여러 해가 지났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도 누군가의 아버지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아버지는 그 벤치밖에 마땅히 있을 자리가 없었다. 이을춘 시인은 '아버지란/ 울/ 장소가/ 없기에/ 슬픈/사람이다'라고 했다. 그 아버지도 울 장소를 찾지 못했던 것일까. 그가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아프다.
- ▲ 일러스트=오어진 기자 polpm@chosun.com
그러나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구조조정과 계약직 전환을 결사반대하는 데모대의 앞장에 서야 한다. 머리도 밀고, 때로는 구사대(救社隊)가 되어 밤샘도 해야 한다. 아버지는 쓴 소주를 들이켜고 잠시 눈을 붙이러 집에 왔다가 무언가에 쫓겨 또다시 새벽길을 서둘러 떠나야 한다.
이을춘 시인은 이 시대의 모든 아버지를 대신해 그 이유를 말한다. 아니 토해낸다. '아버지는/ 결코/ 무심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가/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체면과/ 자존심과/ 미안함/ 같은/ 것이/ 어우러져서/ 그 마음을/ 쉽게/ 나타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아버지가/ 아침 식탁에서/ 성급하게/ 일어나서/ 가는 장소는/ 즐거운 일만/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니다. / 아버지는/ 머리가/ 셋달린 괴물과/ 싸우러 나간다./ 그것은/ 피로와/ 끝없는 일과/스트레스다.'라고 했다.
내 아버지도 그러셨다. 배고파 하는 많은 자식들과 고생하는 아내와 학자의 길 한가운데서 방황하셨다. '아버지란/ 돌아가신/ 뒤에도/ 두고두고/ 그 말씀이/ 생각나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느덧 정년퇴직을 눈앞에 둔 늙은 자식은 오늘 아버지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