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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불신 탓에… 희생이 남긴 국익마저 외국으로

namsarang 2010. 5. 20. 16:54
[‘천안함’ 결과 발표날에]
 

우리 불신 탓에… 희생이 남긴 국익마저 외국으로

 

전호환(대한조선학회 함정기술연구회장.부산대 교수)

 

전호환 대한조선학회 함정기술연구회장 부산대 교수


천안함 침몰원인 규명에 대한 '민군(民軍)합동조사단'(합조단)이 오늘 조사 결과를 발표한다. 그동안 인터넷엔 천안함 침몰 원인과 관련해 공상(空想) 소설 같은 이야기들이 나돌았다. 그럴 때마다 함정 설계를 가르치고 관련 학문을 추구하는 학자로서 46명 순국장병과 유가족에게 죄인이 된 심정이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는 해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침몰하지 않는 함정을 설계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다. 정확한 진상 규명을 통해 고인들을 편히 쉬게 하는 것이 이 죄를 조금이라도 씻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문적 이론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수사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여기에는 어떠한 억측과 가설은 물론이고 특정 집단의 편견도 배제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는 2000년부터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적 조선(造船) 산업 국가가 됐다. 생산 기술과 건조량은 세계 1위다. 국내 조선 관련 학문의 수준 또한 세계 정상급이다. 지난 4년간 조선 관련 세계 최우수 저널에 발표된 우리나라 논문 수는 점유율 12.4%로서 미국을 제치고 1등이다. 국내 모든 학문 분야를 통틀어 세계 1등은 조선 분야가 유일하다.

합조단에는 이러한 세계 1등 조선 산업과 기술 분야에 종사하는 학계·연구소·산업계 다수의 전문인력이 포함되어 있다. 함정기술연구회에서 추천한 분야별 전문가들이다. 또한 미국·영국·호주·스웨덴 등 선진 외국 전문가들도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전문가들이 현장조사 및 과학적 분석을 통해 발표하는 것보다 더 합리적이고 공정한 다른 결과가 있을 수 있을까.

비(非)전문가들이 좌초 및 충돌에 의한 침몰을 주장한다. 선박은 두꺼운 외판의 내부에 강판과 보강재로 연결하여 벌집 같은 수밀 격벽 구조로 만들기 때문에 산더미 같은 큰 파도에도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다. 외판이 찢겨 내부에 물이 차더라도 수밀격벽 구조 때문에 순식간에 두 동강이 나 침몰하지 않는다. 많은 부분이 찢겨 격벽들로 나누어진 여러 구획에 시간을 두고 물이 차면서 침몰할 수는 있지만, 천안함의 경우처럼 선체 중앙 상당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우리끼리의 불신과 분열로 인해 우리가 중대한 기밀을 헌납했다는 사실도 잊어선 안 된다. 함정 침몰 사고에 대한 자료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공개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특히 천안함과 같이 순식간에 두 동강으로 갈라져 침몰한 사례는 더욱 그렇다. 전쟁을 제외하고 수중폭발 시험을 통해 함정의 충격응답·파괴현상을 조사한 나라는 미국을 포함하여 극소수뿐이다.

미국에서 수중충격 전문가로 활동하다 은퇴한 후 국내 대학에서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신영식 박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99년 실시한 어뢰의 비접촉 수중(水中) 폭발에 의한 2700t급 호위함 침몰시험 동영상을 공개하였다. 300kg의 폭약으로 천안함보다 두 배나 무거운 함정이 수초 내에 두 토막으로 찢어져 침몰한다.

이렇게 막대한 비용을 들여 수중 폭발시험을 하는 이유는 적함(敵艦)의 수중 공격에 대비하여 안전한 함정을 설계하기 위한 기술적 자료를 얻기 위해서이다. 해외에서 시험한 수중폭발 함정 침몰시험은 안전과 환경보호 등의 이유로 깊은 바다에서 수행되었다. 따라서 침몰된 선박을 회수한 적이 없어 절단면을 비롯한 침몰함정 손상에 대한 자료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민의 알 권리와 조사결과의 투명성과 공정성 보장을 주장한 일부 언론과 사람들의 요구로 외국인을 합조단에 포함시킨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46명의 고귀한 생명과 천안함을 잃고서 얻은, 우리의 생명과 국가안보와 직결된 소중한 기술적 자료를 외국 조사단에게 고스란히 바친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예기치 않게 발생한 대형사고는 처음에는 일반인들에겐 논리적으로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큰 사고일수록 급하게 수집된 불명확한 발표 자료들이 사람들의 불신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세계적 전문가로 구성된 합조단의 조사결과가 나온다. 함정기술연구회는 이를 신뢰한다. 기술적 자료도 축적됐기 바란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함정을 만들어 고인들에게 바칠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