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
성모님의 집에서 봉헌한 야외미사 강론에서 허영민 신부는 "기적은 우리 삶 곳곳에 있으며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기적이란 믿음의 결과가 아닌가.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갈 것"이라고 하셨다(마태 17,20). 우리는 믿음을 청하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융 신부 일행이 성모님이 사셨던 집터를 발견한 1891년 당시 이곳에는 6~7세기 비잔틴시대 집 주춧돌만 있었다고 한다. 지금 건물은 1950년 이탈리아 카푸친 수도회에서 건축한 것이다. 미사 후 야외제대 옆 성모님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성모님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자 가슴이 쿵쿵 뛰었다. 우리 죄인을 위해 하느님께 대신 빌어주시는 성모님, 아, 어머니!
다시 버스를 타고 에페소 유적지로 이동했다. 고대 에페소는 주민 20여만 명의 그리스 최대 도시였다. 로마 통치를 거쳐 비잔틴 제국, 다시 오스만 터키 지배를 받으면서 옛 영광의 자취는 온 데 간 데 없고 지금은 폐허만 남아 있다.
에페소의 원형 음악당은 터키에서 가장 큰 규모로 2만5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무대에서 우리는 가만히 눈을 감고 성가를 불렀다. '주 하느님 지으신 모든 세계, 내 마음 속에 그리어볼 때…' 하느님을 향한 찬양 소리가 극장 전체를 감싸고 다시 우리 귓속을 울렸다.
요한묵시록에는 에페소 신자들을 향한 칭찬과 꾸중이 기록돼 있다. 요한은 악인들을 용납하지 않는 정의감과 뛰어난 인내심, 노고를 칭찬하신다. 그러나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에페소 신자들을 나무라셨다(묵시 2,1-7).
에페소는 사도 요한과도 관계가 깊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 요한에게 성모님을 모시도록 하셨다(요한 19,26-27). 이후 요한은 오래도록 에페소에서 활동했다고 전해진다. '사랑의 사도' 요한이 생을 마치기까지 완전한 사랑을 역설한 곳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
또한 에페소는 사도 바오로와도 관계가 깊은 곳이다. 2차 전도여행 때 잠시, 3차 전도여행 중에는 27개월 가까이 머물며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바오로 사도 당시만 해도 에페소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상업 중심의 항구도시였다. 에페소가 사치와 허영에 빠져 있을 때 바오로 사도는 성령의 불타는 열정으로 말씀을 전했다. 바오로 사도가 진정 그렇게 열심히 선교했고 초세기 교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소아시아(오늘의 터키 지역) 교회들은 오랜 세기 동안 이슬람 지배 속에 있게 됐다. 지금은 이슬람 사원들만 곳곳에 보일 뿐 찬란했던 교회의 자취는 사라지고 돌무더기로 흔적만 남아 있다. 왠지 허전하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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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페소 유적지. 멀리 원형 음악당이 보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