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하느님이 정말 계신가요?

namsarang 2010. 7. 22. 22:45

[사목일기]

 

하느님이 정말 계신가요?


                                                                                                                                        홍석정 신부(의정부교구 청소년사목 7,8지구 전담)


 유리라는 친구는 얼굴이 하얗고, 눈이 커다란데다 말수가 별로 없는 중학교 1학년 여자아이였다.

 

 유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성당에 거의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왔고, 성탄 예술제에도 소극적인 성격과는 다르게 적극적으로 성극부에 가입,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다. 특히 6학년 때 있었던 뮤지컬에서 성모 마리아 역을 맡아 감동적인 노래로 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단연 인기였다.

 

 그러던 아이가  4월부터 성당에 드문드문 빠지기 시작하더니 6~7월 께에는 안 나오는 날이 더 많았다.

 

 게다가 표정도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불안해 보였지만, 같은 또래 학생들도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비슷한 양상을 보였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느 날, 사제관으로 들어가려는데 학생들이 다투는 소리가 들려 무슨 일인가 보다가 깜짝 놀랐다. 유리가 세 명의 남자 아이들과 다투고 있는 것이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남학생들은 고개를 숙이고 땀을 흘리고 있었고, 유리가 도무지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퍼붓고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따로 불러 조용히 타일러야겠다고 생각하고 사제관으로 들어갔는데 이틀 후, 유리가 먼저 면담을 신청했다.

 

 사제관으로 들어온 유리는 자리에 앉자마자 매우 격앙된 목소리로 물었다.

 

 "신부님, 하느님이 정말 계신가요?"

 

 이건 결코 설명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이의 마음을 읽어야 했다. 유리는 한참을 세상이 얼마나 부조리하며, 하느님이 계시다면 세상은 이럴 수가 없지 않겠냐며 자신은 차라리 악마를 믿겠다는 말까지 꺼내며 날을 세웠다.

 

 도대체 유리가 어떤 불행을 겪었기에, 어떤 커다란 악에 마음을 다쳤기에 저렇게 스스로의 마음을 닫으려고 하는 걸까?

 

 두 시간 동안을 분노하며 절규하던 유리는 지쳤는지 손에 얼굴을 파묻고는 흐느꼈다. 자리에서 일어선 유리는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래도 하느님은 계실 거라고 말하고는 웃는 얼굴로 돌아갔다. 그게 내가 본 유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유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할머니와 지하 단칸방에서 단 둘이 살았고, 할머니가 폐지를 주워 생계를 꾸리셨다는 것 정도다. 이후로도 한참을 유리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지금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가장 힘겨웠던 순간에 예수님께서 유리에게 당신을 보여주셨다 생각하고, 유리 역시 그것을 느꼈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또 다른 '유리들'에게 이렇게 전하고 싶다.

 

 "하느님은 정말로 계시단다. 네가 가장 슬퍼하는 그곳에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