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FA대회 한국 최고성적' 20세이하 여자축구 최인철 감독
지소연, 이현영, 문소리… 동산정보高서 기른 주축
여자한텐 힘들다는 포 백, 기본 강조하며 끝내 완성
20세 이하 한국 여자 축구팀의 월드컵 4강 진출에는 최인철(38) 감독의 '10년 계획'이 있었다. 2000년부터 여자 축구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최 감독은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교, 대표팀까지 각급 여자 축구팀을 모두 맡으며 지금의 4강 주역들을 발굴해냈다. 축구계에선 그를 '여자 축구에 미친 사람'이라고 부른다.
'선수 최인철'은 유명세와는 거리가 멀었다. 동북중, 동북고와 건국대에서 선수생활을 한 최 감독은 대학 4학년 때 결핵을 앓는 바람에 프로선수의 꿈을 접고 군 복무를 했다. 이후 1998년부터 서울 동명초등학교 남자팀에서 코치생활을 했고, 2000년 이 학교에 여자팀이 만들어지면서 처음 감독으로 여자 축구와 인연을 맺게 됐다. '축구하고 싶은 여자 아이들 모두 모여라'는 전단을 직접 붙여가며 선수들을 모집했다.
- ▲ 자랑스럽게 국기를 흔드는 날이 오기까지 한국 여자축구는 그늘에서 숱한 좌절과 수모를 맛봤다. 콜롬비아를 누르고 FIFA 대회 사상 최고 성적(3위)을 올린 한국 선수들은 관중들의 갈채 속에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김혜리(20번)가 태극기를 흔들며 동료들과 환호에 답하고 있다. /Getty Images
최 감독은 이후 오주중학교(2001~ 2004년), 동산정보산업고(2004~ 2008년)를 거치면서 지금의 20세 이하 대표팀 주축 선수들을 발굴해냈다. 지소연과 강유미(이상 한양여대), 이현영(여주대), 정혜연(현대제철), 문소리(울산과학대) 등이 모두 그가 동산 시절 길러낸 제자들이다. 이 때문에 동산정보산업고는 지금도 '한국 여자 축구 대표팀의 사관학교'라고 불린다.
당시 동산정보산업고는 국내에서 무적(無敵)의 팀이었지만 그는 "국내 대회 우승은 연습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라"며 선수들이 보다 높은 목표를 갖도록 질타했다.
낯선 여자 축구를 처음 맡았을 때는 감수성 예민한 여자 선수들 가르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 감독은 선수들을 딸처럼 대하며 벽을 허물어갔다. 특히 오주중과 동산정보산업고를 거치며 6년 동안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은 대표팀 주공격수 지소연과는 더욱 각별한 사이다.
- ▲ 2000년부터 여자 축구 지도자로 활동한 최인철 감독에겐‘여자 축구에 미친 사람’이란 말이 붙는다. 최 감독이 딸처럼 생각하는 지소연과 포옹하는 모습. /대한축구협회 제공
지소연의 어머니 김애리씨는 "우리 집 형편이 어려운 것을 보고 감독님이 소연이에게 용돈도 자주 주셨고, 가끔 내 병원 치료비도 보태주셨다"고 했다. 지소연이 중학교 3학년 때 발목에서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을 때도 최 감독이 치료비를 마련했다고 한다.
최 감독은 또 공부하는 지도자로도 유명하다.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김동기 기술연구팀장은 "협회에서 지도자 세미나가 열리면 가장 많은 질문을 하는 사람이 최인철 감독"이라며 "까다로운 컴퓨터 비디오 분석 프로그램을 스스로 익혀 선수들 지도에 활용할 만큼 열심히 공부한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오주중 시절엔 60경기 연속 승리의 대기록도 세워 봤고, 동산정보산업고 감독 시절엔 오프사이드 트랩을 쓰는 '포 백(4 back) 일자 수비' 기술을 처음 본격적으로 여자 축구에 도입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여자 선수들은 체력과 기술 부족 때문에 4백을 소화할 수 없다'는 믿음이 있던 시절이었다. 최 감독은 한 경기를 이기는 것보다는 기본이 튼튼해야 한다는 이유로 초반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일자 수비를 완성했다. 이런 훈련 방침은 지금 청소년 대표팀의 든든한 자산이 됐다.
최 감독은 3·4위전을 앞두고 FI FA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 여자 축구의 특징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앞으로는 한국 여자 축구의 저변을 넓혀가는 데 힘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제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