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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 매몰광부 33인을 위한 "글뤽 아우프!"

namsarang 2010. 8. 31. 22:03

[편집자에게]

칠레 매몰광부 33인을 위한 "글뤽 아우프!"

  • 권이종 ㈔한국파독광부총연합회 부회장·한국교원대 명예교수
 
              ▲ 권이종
칠레 북부 산호세의 한 광산이 무너져 지하 700m의 어둠과 지열 속에 갇힌 33인의 광부들이 이틀에 참치 두 스푼과 한 모금의 우유, 그리고 비스킷 한 조각으로 버티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25일자 A17면).

인류사회가 시작한 이래 가장 험한 일 중 하나가 '광부'라는 직업이다. 매몰 사고, 지열과 탈진, 가스폭발과 폐에 붙은 탄가루 등 매 순간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다. 그래서 '막장 인생'이란 말이 나온다. 칠레의 광산 붕괴 소식을 접하고 무척 마음이 아팠다. 필자 또한 과거 파독(派獨) 광부로 일하면서 큰 사고를 당했었다. 무너진 천장 암반에 왼손이 휴짓조각처럼 짓눌리고 일그러졌다. 큰 수술을 받아야 했고 '영영 손을 못 쓰게 될 수 있다'는 말에 절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 위안을 삼았었다.

지하 막장에서는 이처럼 예기치 못한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 매일 생사를 기약할 수 없는 막장으로 쓸쓸히 향해야 했던 우리 광부들 사이에 '수호 언어'로 주고받던 한 마디가 있었으니, 바로 '글뤽 아우프(Glueck Auf)'다. '죽지 말고 살아서 올라오라'는 독일어다. 보릿고개로 허기졌던 시절, 이역땅에서 검은 눈물과 땀을 흘려야 했던 파독 광부들의 자그마한 기도였다. '글뤽 아우프'라고 말할 때는 '짧은 미소'도 덤으로 건넸었다. 지난 1964년 12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독일 탄광촌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박 대통령의 연설 도중 광부와 간호사들이 복받친 울음을 터뜨려 눈물바다를 이뤘던 것도 바로 "살아 돌아오라"는 말씀 때문이었다.

그때 흘렸던 뜨거운 눈물을 생각하면 46년이 흐른 지금도 눈물이 난다. 17년의 독일 체류기간 동안 필자는 나라와 가족과 민족을 단 한 번도 잊어본 적이 없다. 그들을 위해 목숨을 건 고난을 이겨냈었다. 독일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인간은 희망을 가진 동물'이라고 했다. 어려운 심리적인 요인과 환경을 극복하고 살 수 있다는 희망, 반드시 살아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신은 그들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멀리서나마 매몰된 칠레 광부들의 안녕을 기원한다. '글뤽 아우프!' 지하에서 다치거나 죽지 말고 지상으로 올라오라는 독일 광산촌에서의 인사말을 칠레 광부들과 가족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