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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그룹의 2차 일본 '침공'

namsarang 2010. 8. 29. 14:35

[조선데스크]

걸그룹의 2차 일본 '침공'

 

      ▲ 정우상 정치부 외교팀장
팝 음악 역사에서 영국은 1960년대와 1980년대 두 번 미국을 '침공'했다. 첫 번째 '영국의 침공(British invasion)'은 비틀스와 롤링스톤스로 대표되는 영국 밴드들에 의해 60년대에 이뤄졌고, 두 번째는 듀란듀란과 컬처클럽 등 뉴웨이브 밴드들의 80년대 미국 상륙이었다. 이들은 미국 음악시장에 단순히 진출했다기보다 미국 음악계의 판도를 바꿨다. 미국에서 '침공'이란 비명이 나올 정도로 당시 영국 밴드의 기세와 인기는 대단했다.

일본은 소녀시대와 카라 등 한국 걸 그룹의 일본 진출을 '코리안 인베이전(한국 침공)'으로 불렀다. 이 말 속에는 긴장과 열광의 감정이 엉켜 있다. 지난 25일 일본 NHK는 9시 뉴스 톱 기사로 5분간 한국 걸 그룹을 다뤘다. 2004년 '욘사마'와 드라마 '겨울소나타'가 1차 '코리안 인베이전'이었다면 올해 8월부터 시작된 한국 걸 그룹들의 일본 '침공'은 2차에 해당한다. 그 사이 보아와 동방신기 등 일부 한국 가수들이 일본 음악차트에서 성공을 거두긴 했지만, 일본에서의 한류(韓流)는 '욘사마'로 대표되는 정적인 이미지였다. 일본 젊은이들에게 한류는 그저 '아줌마 문화' 정도로 치부됐었다.

그러나 소녀시대와 카라의 진출로 한류 팬층과 이미지는 크게 달라졌다. 한 일본 네티즌은 "소녀시대 공연은 아빠와 내가 함께 보고 싶은 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도 소녀시대를 좋아할 이유가 있고, 딸도 소녀시대에 열광할 이유가 있다. 2차 침공은 일본의 전 세대에 영향을 주고 있다.

삼성은 70년대 일본의 소니와 도시바를 모델로 삼았다. 삼성은 처음엔 그들을 모방하기 급급했지만, 최고의 인재들을 모으고 기업 경영에 순발력과 집중력을 보여주며 어느 점에선 일본 경쟁사들을 넘어섰다. 삼성의 성장 그늘에는 대기업의 하도급업체로 전락한 중소기업들의 눈물이 있었다. '올바른' 성장은 아니었지만 그런 선택과 집중 노선은 지금의 삼성이 나온 원동력이었다.

한국 대중음악도 비슷한 궤도를 걷고 있다. 아이돌(idol) 그룹은 원래 일본 문화다. 한국은 이를 수입했지만 현 단계에선 일본 아이돌 그룹의 '귀여움'을 넘어 그들이 갖지 못한 역동성과 '멋'으로 '본토 문화'를 넘보고 있다. 음악 인력과 자본이 기형적으로 댄스 음악에 집중되면서, 록과 포크, 재즈 등은 고사(枯死) 상태다. 그러나 그 집중과 선택 때문에 한국 댄스 음악과 걸 그룹은 경쟁력을 갖게 됐다. '압축 성장'에는 이런 명암(明暗)이 있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는 지난 8월 10일 담화문에서 "오늘날 양국의 교류는 매우 중층적이며 광범위하고 다방면에 걸쳐 있다"고 했다. 독도와 과거사 문제로 두 나라 관계는 여전히 불안하지만, 문화 등 민간교류를 통해 벽을 허물자는 것이다. 이런 담화가 아니더라도 한·일 젊은이들은 지금도 홍대 앞의 수많은 이자카야(일본 술집), 신주쿠(新宿) 한국식 고깃집에서 그리고 인터넷에서 실시간으로 교류하고 있다.

98년 일본 대중문화 개방 때의 두려움과 공포를 얘기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한국에 상처만 남긴 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에 이뤄지는 한국 음악의 '일본 침공'은, 두 나라 간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