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주 성당
행주 성당은 1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뿌리 깊은 성당으로 가혹한 시대의 아픔을 신앙의 힘으로 나라의 독립과 민족의 희망을 일구어낸 신앙선조의 얼이 살아 숨쉬는 공동체로 2004년 11월 의정부 교구의 출범과 함께 50여년간의 긴 공소에서 벗어나 본당으로 부활하였다.
의정부교구 관할 내에서는 고양 지역에 최초로 성당이 세워졌다. 1905년 행주에 세워진 이 성당은 한국교회사상 28번째였으며 서울대교구 내에서는 9번째 성당으로 기록된다. 또 일산지역에는 일제 때부터 일산공소를 중심으로 신자들이 공동체를 이루어왔으며 한국전쟁을 맞으며 장단에서 신자촌을 이루고 있던 신자들이 피난을 오면서 신자수가 급증했다. 이런 내력으로 고양 지역에 유입돼 전파되기 시작한 천주교는 지역사회의 고난과 자랑을 함께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10년 공소에서 본당으로 승격되어 인근 5개군을 관할하던, 남한에서 오래된 성당중의 하나이며, 1910년 성당을 지은 흔적이 남아있을 만큼 우리 교회의 초창기 소박한 모습을 아직도 담고 있는 소중한 성당이다.
올해로 지은 지 100년을 맞은 이 성당은 현판도 없이 옛날 시골 여염집 모습 그대로다. 안에 들어가면 여느 성당과는 달리 신발을 벗고 마룻바닥에 앉아 예배를 봐야 한다. 천장에는 소나무 들보가 얹혀있고 벽면에는 명동성당을 개축할 때 이곳으로 옮겨온 예수그리스도 그림 10여 점이 걸려있다.
행주 성당 건물이 완공된 것은 1905년. 일제강점기에도 비교적 풍성한 경제생활이 가능했던 지역이어서 신도도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광복직전 일제가 외국인 신부를 일제히 추방해 국내 전체 신부의 수가 크게 줄어들면서 이곳은 신부 없는 공소로 격하됐다.
광복 후 신도들이 크게 늘어나 성당의 이름을 되찾았으나 곧 6·25전쟁으로 건물 일부가 붕괴되면서 다시 공소가 되기도 했다. 성당 왼쪽에 튀어나온 출입문이 있는데 남녀구분이 엄격하던 건축 초기에 여성 신도들이 따로 드나들던 곳이다. 나이 지긋한 할머니 신도들은 지금도 꼭 이 문으로 드나든다고 한다.
현재 행주내동과 행주외동을 관할하며 총 인구수1779명중 신자가 369명으로 다른 지역보다 신자 비중은 높으나(20.7%) 신자수가 영세하다. 성직자와 수도자도 여러명 배출하였다. 이기양, 유근일 신부, 류성엽, 류병순, 박문옥, 이은주 수녀가 행주 성당 출신이다.
1909년 약현 성당(현 중림동)에서 분리, 행주성당 신축, 김원영 초대신부 부임 자료 수집에 홍순권 대건 안드레아 행주 본당 주임신부님과 김세환 로무알도 선교사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용, 사진 출처 : 오영환, 한국의 성지 - http://www.paxkorea.co.kr, 20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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