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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카쿠 분쟁의 승자는?

namsarang 2010. 10. 4. 21:36

[특파원 칼럼/김창원]

 

센카쿠 분쟁의 승자는?

 

 

지난달 7일 오전 일본 언론에 긴급 뉴스가 타전됐다. 중국과 일본이 영유권을 다투고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부근에서 중국 어선이 일본 순시선과 충돌했다는 내용이었다. 센카쿠 열도 분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본이 실효 지배하는 이 지역에 중국 어선이 ‘침범’한 것도 처음이 아니다. 이번에도 과거처럼 일회성 사건으로 유야무야될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일본 정부는 다음 날 바로 선장을 체포했고 국내법에 따라 기소하겠다고 공언했다. 모든 절차가 일본답지 않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남의 나라를 침범해 물적 피해까지 보였으니 엄연한 국내법 위반’이라는 일본. ‘당장 석방하지 않으면 중일관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는 중국. 평행선을 달리는 두 나라의 자존심 대결이 언제 어떻게 접점을 찾을지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센카쿠 사태는 사건 발생 17일 만인 24일 일본의 백기투항으로 싱겁게 종료됐다.

일본 언론의 센카쿠 사태 검증보도에 따르면 사건발생 초기 일본 정부 내에도 중국의 반발과 후폭풍을 우려한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하지만 ‘센카쿠는 우리 땅’이라는 원칙론 앞에 원만한 해결을 주장하는 외교적 유화론은 힘을 잃었다.

무엇이 이런 오판을 야기했을까. 사건 발생일 당시 일본 집권 여당인 민주당의 관심은 온통 일주일 뒤에 열릴 당 대표선거에 쏠려 있었다. 정권을 유지하느냐 마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있던 민주당 내각에 센카쿠는 뒷전이었다. 객관적 상황인식과 냉정한 판단을 할 여유가 없었다. 대표선거에서 승리한 간 나오토 총리는 내각 인사를 위해 다시 사흘을 허송세월했다. 일본 내각이 진용을 갖추고 제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사태는 돌이킬 수 없었다. 일본의 협상 없는 원칙론에 약이 오른 중국은 전방위 융단폭격을 쏟아 부었고 결국 센카쿠 사태는 ‘일본 전후 최대의 외교참패’라는 불명예를 안겨줬다. 
 

 

그렇다면 중국은 완승을 거둔 것일까. 초기에 중국 정부의 대응은 차분했다. 주중 일본 대사를 통한 항의, 장관급 이상 교류 중단과 같은 납득할 만한 외교적 수단이 동원됐다. 하지만 원자바오() 총리가 21일 특단의 조치를 발표한 이후 상황은 돌변했다. 중국은 첨단 정보기술(IT) 제품의 필수소재인 희토류 금수조치 카드를 빼들었고 일반 수출입 상품에 대한 통관지연으로 목을 조였다. 다투다가 상대가 주먹을 드니 쇠몽둥이로 반격한 셈이다.

한 가지 찜찜한 것은 중국의 의도다. 쇠몽둥이는 분명 일본을 향해 휘둘렀다. 하지만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주변국도 ‘화나면 무섭다’는 것을 시위하는 듯한 무언의 위협에 불편해졌다. 특정 국가에 대한 금수조치는 국제무역의 기본적인 룰을 깨는 것이다. 수출입 규칙을 모든 국가에 차별 없이 적용하는 최혜국 대우는 세계무역 질서의 근간이 되는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제1조 제1항이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인 중국은 ‘수틀리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폭력성을 드러냈다.

센카쿠 사태 이후 중국 내에서는 외교적 완승을 자축하는 모양이다. 과연 그럴까. 내부 권력다툼에 정신이 팔려 심각한 오판을 한 일본이 승자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번 사태로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 원칙을 깨는 ‘중국식 문제해결방식’에 심각한 불신을 갖기 시작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김창원 도쿄 특파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