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원목]
더는 미룰 수 없는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
세계동물보건기구(OIE)의 기준에 따라 캐나다는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를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캐나다산 쇠고기의 수입을 금지했다. 이에 캐나다가 수입 재개를 요구하며 한국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지 1년 반이 지났다. 이제 WTO가 보고서를 작성하는 단계이므로 내용이 곧 확정된다.
한국은 캐나다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부인할 만한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쇠고기 수입국 입장인 일본과 대만도 도움을 주지 못했다. WTO는 관련 국제기구 및 전문가에게 의견을 문의하면서까지 심리에 신중을 기했으나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캐나다산 쇠고기가 안전하다는 것이다. 한국의 패소 판정은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판정이 내려지면 축산물 수출국에는 하나의 이정표가 수립됨을 의미한다. 뚜렷한 국제기준이 수립된 상태에서 수입국이 교역제한 조치를 취하는 경우의 한계를 최초로 확인하는 데 의미가 있다. 모든 나라가 국제기준을 따를 필요는 없으나 소비자의 민감한 위생의식과 국내정치적 이유로 국제기준보다 엄격한 식품교역 조건을 부과하는 경우에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원칙이 그것이다. 미국 유럽연합(EU) 아르헨티나 브라질 인도 중국 등 쇠고기 수출 및 잠재적 수출국이 이번 판정에 3자로 참여한 이유도 이 원칙을 확인하기 위함이다.
한국은 동일한 광우병 위험통제국인 미국에 대해서는 쇠고기 수입을 허용했다. 더구나 캐나다에서 출생한 소가 미국에서 도축되면 미국산 쇠고기가 되어 국내시장으로 들어온다. 이런 상황에서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의 전면금지를 정당화할 논리는 없다. 캐나다와의 전문가 기술협의를 양국 정부 간 양자협상 채널로 공식화해서 WTO 분쟁을 종결하기 위한 양보안을 제시해야 한다. 미국과의 경우처럼 30개월 미만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하고 가축법상의 차별조항을 개정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중국도 캐나다산 쇠고기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다가 최근 30개월 미만 쇠고기의 수입을 결정했다.
다만, 미국보다 광우병 발견 건수가 많은 캐나다이기에 조기통보 및 검역주권 확보에 신경을 써야 한다. 이러한 타협안을 1년 이내에 국회에서 처리하겠다고 공식적으로 약속하면 캐나다는 판정 절차를 중지한다. 그러면 시한 내에 법을 개정하고 수입을 허용함으로써 판정 없이 종료시켜야 한다.
WTO 판정이 나오면 한국에는 ‘쇠고기 보호주의’라는 오명이 안겨진다. 아직 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쌀을 제외하고 쇠고기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품도 없111다. 점점 국제경쟁력을 잃어가는 농업 보호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의 쇠고기 시장은 WTO 체제와도 악연을 맺었다. 1980년대 말에는 미국 호주 뉴질랜드의 제소로 쇠고기 수입금지 제도 및 쿼터할당 제도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의 위반 판정을 받고 수입을 재개해야 했다. 2000년에는 수입 쇠고기 구분판매제도가 WTO 협정 위반 판정을 받음에 따라 이 제도를 폐지해야 했다.
쇠고기 수입금지 조치가 또 위반 판정을 받으면 10년을 주기로 한국의 쇠고기 보호주의의 국제적 불법성이 재확인되는 셈이다. 보호무역주의 동결을 주창하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선도하는 한국의 국격에 맞지 않는 일이다. WTO 판정은 OIE 기준에 따른 수입 재개를 강요하므로 한우 농가의 이익에도 불리하다. 힘들게 유지한 미국산 30개월 이상 쇠고기의 자율적 수출입 금지체제를 조기에 붕괴시키는 데도 활용될 것이다. 되로 막을 일을 말로 막는 사태가 벌어진다. 캐나다와의 양자협상 타결을 통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을 책임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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