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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여자프로복싱 4대기구 통합 챔피언 김주희

namsarang 2010. 10. 11. 08:37

[최보식이 만난 사람]

세계여자프로복싱 4대기구 통합 챔피언 김주희

  • 최보식 선임기자 congchi@chosun.com
  • 입력 : 2010.10.11 03:16 / 수정 : 2010.10.11 06:47

"저처럼 굶어본 86년생은 없을 것, 챔피언 되면 돈 많이 벌 줄 알았는데…"
영양부족으로 빈혈증세 첫 세계타이틀 도전할 때 수혈까지 받고 링에 올라
복싱 대중적 인기 없어 시합은 1년에 겨우 한 번 대전료 2천만원이 '연봉'

"포스터 사진을 찍을 때 상대 필리핀 선수를 처음 봤는데, 손이 솥뚜껑만 했어요. 뼈도 통뼈고요. 하지만 아무리 그래 봐야 매에는 장사가 없는 거죠."

"그렇게 큰 주먹을 보니 링에 오를 때 겁이 좀 안 났습니까?" 하고 내가 물었을 때다. 여자복서 김주희(24)는 흥흥 코웃음부터 쳤다. 자존심을 건드릴 때 나오는 버릇 같았다.

"흥,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손이 크다고 다 이기면, 제가 여러 개 타이틀을 거머쥔 통합챔피언이 아니죠. 저는 링에 오르면서 한 번도 겁먹은 적이 없어요. 제 주먹을 한번 보세요. 일반 여자들보다 더 작아요. 체력으로 인한 소나기 펀치를 퍼붓거나, 타이밍이나 스피드에 의해 상대가 다운되는 것이죠."

―시합에서는 펀치력도 중요하지 않나요?

"저희 같은 경량급은 한 펀치에 상대가 넘어가는 경우가 없어요. 링 위에서 저는 한 대 맞으면 두 대를 때릴 생각으로 달려들어요. 권투란 뭐예요. 한 대 맞고 한 대 때리면 동점입니다. 많이 때려야 이기죠. 하지만 링에 내려와서는 누구와도 싸워본 적이 없어요. 이런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싸움에 가담해서도, 휘말려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누가 지나가며 저를 툭 치더라도 먼저 '잘못했습니다' 하고 말해요."

김 선수는“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이 다시 기회를 만들어주지만 내게는 두 번의 기회란 없었다”고 말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지난달 초 그녀는 10라운드까지 난타전을 벌여 2:0으로 판정승했다. 눈 아래 주먹만한 피멍이 든 채 세계여자프로복싱 4대 기구 통합챔프가 됐을 때 곧바로 그녀를 만날 수는 없었다. 후유증이 심했을 뿐만 아니라 그 피멍든 얼굴로는 카메라 앞에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서울 문래동 거인체육관에서 만난 건 한 달쯤 지나서였다. 그녀는 낯선 사람 앞에서 뾰로통한 표정으로 앉아있었다. 눈 아래로 불그죽죽한 피딱지가 여전했다. 왼쪽 눈 속에는 선홍색 피멍이 맺혀 있었다. 매일 병원에 다닌다고 했다.

―원래 피부가 곱고 하얗군요.

"엷은 편이죠. 여자로는 좋은 피부인지 몰라도 선수로는 핸디캡이죠. 펀치가 스치기만 해도 멍이 들어요. 뭐, 상대적이에요. 얼굴이 각지고 강하면 복부가 약하거든요. 저는 복부가 강한 편이죠."

4대 기구 통합 챔프로 결정된 뒤의 모습 /연합뉴스

―시합을 마친 뒤 거울을 보고는 많이 속상했겠군요.

"저도 여잔데 속이야 상했죠. 하지만 진짜 속상한 것은 시합 전이었어요. 이번 시합은 여덟 번이나 연기됐어요. 연초부터 준비해왔는데 미뤄질 때마다 우는 거죠."

―울다니, 왜요?

"지치잖아요. 시합날에 맞춰 체중 조절을 하며 운동하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미뤄진다는 통보를 받아요. 이십일 뒤, 한 달 뒤, 한 달 반 뒤…, 이런 식으로 미뤄지니까 운동을 멈출 수도, 쉴 수도 없었어요. 이 때문에 제가 탈진해 바닥에 쓰러지고 응급실에 실려간 적도 있어요."

―복싱 인기가 없어 시합이 미뤄지나요?

"그건 제 입으로 답변하기가 뭐해요. 2001년 프로 데뷔한 이래 제때 시합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었지만, 이번처럼 많이 미뤄진 적은 없었어요."

시합이 연기되는 것은 시합 경비와 대전료 등을 대주는 스폰서(후원자)를 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복싱의 대중적 인기가 떨어진 탓이다. 시합을 해도 입장료 수입은 없다. 스폰서들이 돈을 대준 만큼 입장권을 갖고 가 주위에 나눠주는 식으로 관객을 채울 따름이다.

하지만 챔피언 벨트를 갖고 있는 선수로서는 8개월 안에 방어전을 갖지 못하면 타이틀을 반납해야 한다. 이번에 김주희 선수가 자신이 보유한 3개 타이틀을 모두 걸고서 시합을 치른 것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타이틀을 반납해야 할 입장에 몰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안달했던 시합을 치러 눈은 퉁퉁 피멍이 들고 코뼈는 어긋날 정도로 부상을 입었는데, 그래 대전료(파이트머니)는 얼마나 받았나요?

"시합 사흘 전에 프로모터(시합을 주선하는 사람)가 관장님에게 '대전료를 500만원 깎자'고 했어요. 관장님은 제 사기 때문에 그 얘기를 시합이 끝나고서 해줬어요. 제가 가진 타이틀 3개를 다 걸고 하는 시합이니, 솔직히 많이 받는 것도 아닌데. 김이 좀 샜지요. 하지만 뭐 별수 있어요. 시합 자체가 이뤄진 것만으로 감지덕지해야 할 판에."

국내 복싱계에서 간판스타인 그녀의 대전료는 3500만원이었다. 계약상 이 돈에서 매니저인 정문호 관장이 33%를 갖고 간다. 하지만 그녀를 10년 동안 키워왔고 그 형편을 너무나 잘 아는 정 관장은 10%만 가졌다. 그래서 그녀는 소득세 등을 제하고 2000만원을 벌었다.

―유일한 수입이 대전료인데, 시합이 1년에 한 번밖에 성사가 안 됐으니 이번 대전료가 '연봉(年俸)'이 되는 셈이군요.

"그 수입으로 부상 치료를 하고, 또 입원 중인 아버지를 모시고 생활해야 해요. 무엇보다 시합 전까지는 운동 빼고는 다른 일은 할 수 없잖아요."

갑자기 그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차라리 어디 가서 아르바이트를 해 월 100만원을 받는 게 낫지요. 건방지게도 관장님께 '시합을 해봐야 적자죠. 그건 관장님도 똑같잖아요. 돈도 안 되는데 저를 키우시는 이유가 뭡니까?' 하고 여쭤봤어요. 관장님께서 '돈이 많아도 너 같은 애를 못 만날 수 있다. 나는 너를 키웠다는 자부심이 있다'고 하셨어요. 아, 관장님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요. 새벽 5시에 제가 운동을 시작하면, 4시면 저를 태우러 왔어요. '권투선수는 무식하다'는 말을 안 듣고 싶으면 공부해라, 하루에 영어 단어를 오십 개씩 외우라고도 하시고…. 이렇게 저를 도와주는 분도 있는데 어찌 제 생각만 하겠어요."

그녀가 중 1때 부모는 이혼했다. 아버지는 일자리를 잃고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초등학교에서 육상선수로 뛰었던 그녀는 중 2때 복싱으로 바꾸었다.

―당초 '세계챔피언이 돼 돈을 많이 벌어 집안을 일으켜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서요.

"어머니가 집 나가고, 너무 힘이 들었어요. 그때는 어린 마음에 힘들어도 앞만 보고 달려가 챔피언이 되면 돈을 많이 벌고 유명해질 거라 여겼지요. 요즘에는 아무리 어려워도 밥 굶는 사람은 별로 없잖아요. 그건 옛날 얘기잖아요. 저처럼 86년생이면서 굶어본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영양이 안 좋을 수밖에 없었죠. 운동을 심하게 하거나 몸이 안 좋으면 빈혈 증세가 나타났어요. 첫 세계타이틀에 도전할 때는 그전에 수혈까지 받아야 했어요."

―빈혈 있는 선수가 어떻게 거친 복싱을 합니까. 주변 의료진이 말리지 않았습니까?

"…정상인 몸을 만들었고, 현재는 거의 정상 수치는 되니까요."

그녀는 18살에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타이틀을 따 여자복싱 사상 최연소 챔피언이 됐다. 하지만 2년 뒤 골수염에 걸린 엄지발가락의 뼈 일부를 잘라냈다. 당시 의료진은 운동 불능 판정을 내렸다. 타이틀도 반납했다. 그런 그녀가 9개월 뒤 다시 링에 올랐다. 2007년에는 세계복싱협회(WBA) 타이틀을 따냈다.

―김 선수처럼 강한 사람은 쉽게 눈물을 보이진 않겠군요.

"오히려 걸핏하면 울어서 혼납니다. 관장님께서 야단치면 눈물부터 나와요. 그러면 '바깥에서 보면 누가 울보인 너를 세계챔피언이라고 하겠느냐'고 더 혼냅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고 변명을 할 수 있듯이, 제가 더 강해지려는 과정이라고 하겠어요."

―김 선수를 모델로 영화 '1번가의 기적'과 드라마도 만들어졌지요? '얼짱선수'라는 말도 듣던데, 직접 출연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요?

"그 정도로 예뻤으면 연예인을 하지 힘들게 복싱하고 있겠어요. 그냥 권투선수치고 괜찮다는 말이지요. 시작할 때는 여고생 복서라고 예쁘게 봐주신 거고. 이제는 제가 나이는 어려도 벌써 노장 선수가 됐어요. 국내 선수 중에는 전적(16전)도 가장 많아요."

―지금껏 유일하게 이인영 선수에게 한 번 졌지요?

"한국챔피언 타이틀 때였어요. 언니를 막상 보니 스포츠 머리에다 남자 같았어요. '트럭을 몰았다' '산전수전 다 겪었다'는 말도 있었고. 당시 고 2때라 시합도 하기 전에 주눅이 들었어요. 4회 KO로 졌어요. 하지만 팬들이 '어린 친구가 대단하다'고 했어요. 그때 반응이 냉담했더라면 아마 그만뒀을 거예요. 진 것도 억울했는데…. 그 시합이 전화위복이 됐어요. 관장님은 제가 약한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그러니까 이인영에게 졌다'며 독기를 품게 만들었어요. 제가 세계타이틀을 딸 때까지는 관장님의 칭찬을 한 번도 못 들었어요."

―그 뒤로 이인영 선수와 한 번 더 붙었나요?

"1년 반 뒤 정식 시합은 아니고 스파링을 붙었어요. 끝나고 보니 언니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었어요. 물론 저도 안 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언니 모습이 훨씬 더 형편없었죠. 그 뒤에 제가 세계타이틀을 땄어요."

―수차례 챔피언 타이틀을 땄지만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꿈은 아직도 이뤄지지 않았죠?

"시작할 때야 타이틀만 따면 그냥 잘 풀릴 줄 알았죠. 세계챔피언은 연예계로 치면 스타가 되는 거잖아요. 이럴 줄은 몰랐죠. 그러면 '왜 돈도 안 되는 걸 계속 하느냐'고 물어보시겠죠."

―그래요. 왜 합니까?

"솔직히 포기하려고 한 적이 많았어요. 돈도 안 되는데.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제가 해온 노력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가치가 있었어요."

―내가 보기에는 '상처뿐인 영광'인데, 대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가치가 있는지 알고 싶군요.

"결손가정 아이들이 다 삐뚤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저는 부모에 대해 원망이 많았어요. 하지만 권투를 하면서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무엇보다 제 자신을 극복한 거예요. 저는 시합 준비에 들어가면 4시간 이상 자본 적 없어요. 저는 세계 최고가 돼야 하는데 뛰어난 아이가 아니에요. 죽도록 열심히 할 수밖에 없어요. 다른 아이들은 실패해도 부모님이 다시 기회를 만들어 주잖아요. 제게는 그런 기회가 없어요. 저밖에 없어요. 그렇게 해서 저 스스로 대학을 마쳤고 석사과정을 밟고 있어요. 아버지도 요양병원에 모셨어요. 뚜렷하게 돈을 모은 것은 없지만 이런 자부심은 있어요. 제가 은퇴해도 저를 빼놓고 우리나라 여자권투를 말할 수 없을 거예요. 저를 보고 희망을 갖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결혼은 꼭 하고 아이도 낳고 싶다고 했는데.

"제 아이는 복싱만 빼고 하고 싶은 거라면 뭐든 다 시킬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편찮으시고 형편이 이런데, 어느 남자가 오겠어요."

사각(四角)의 링에서도 참 곱게 자랄 수 있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