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

[스크랩]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

namsarang 2010. 10. 11. 21:56

 중국-광서성 비경 농지와 운무

 

 

등려군(鄧麗君)-첨밀밀(甛蜜蜜)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

 

1.靜夜思(정야사) - 이백(701~762):자는 태백(太白),

床前明月光(상전명월광)      머리맡에 밝은 달빛

疑是地上霜(의시지상상)     땅에 내린 서리인가.

擧頭望明月(거두망산월)      머리 들어 밝은 달 바라보다

低頭思故鄕(저두사고향)     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고향을 떠올렸을 때 중국인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이백의 명시. 중국인이라면 누구나 외우는 시이기도 하다.

독음과 뜻이 모두 명려하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시.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향수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이 때문에 천 년이 넘도록 중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시로 자리잡은 작품.

복잡한 사상이나 화려한 수식 대신, 가장 담담하고 소박한 필체로 풍부하면서도 섬세한 감정을 묘사한 시.

 

2.遊子吟(유자음)-    孟郊(맹교) (743~806) 唐代 중당때의 시인

 

慈母手中線(자모수중선)     인자하신 어머니 손에 실을 드시고

游子身上衣(유자신상의)     떠나는 아들의 옷을 짓는다

臨行密密縫(임행밀밀봉)     먼 길에 해질까 촘촘히 기우시며

意恐遲遲歸(의공지지귀)    돌아옴이 늦어질까 걱정이시네

誰言寸草心(난언촌초심)    한 마디 풀 같은 아들의 마음으로

三春暉(보운삼춘휘)    봄 3달 햇볕에 보답할수 있갰는가 

 

모정을 읊은 송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정인 어머니의 사랑을 기리고 있다.

특히 어머니의 사랑을 봄 볕에 비유한 마지막 두 구는 지금도 널리 쓰이는 비유.

화려한 시어는 없지만 담백하고 소탈한 어투 속에 배어 나오는 아름다움은 진하다.

3.賦得高原草送別(부득고원초송별)고원초을 보고 시를 지어 송별하다.- 백거이(白居易;772-846) 

어려서부터 당나라 중기의 사회적 혼란의 시기를 몸으로 겪었다. 

 

離離原上草(이리원상초) : 무성한 언덕 위의 풀
一歲一枯榮(일세일고영) : 한 해에 한 번씩 났다가 시든다..
野火燒不盡(야화소부진) : 들불에 타도 없어지지 않고
春風吹又生(춘풍취우생) : 봄바람이 불면 또 자라난다.
遠芳侵古道(원방침고도) : 멀리 뻗혀 있는 들풀은 오래된 길을 덮고
晴翠接荒城(청취접황성) : 밝은 풀빛 거칠은 옛 성터에 어린다.
又送王孫去(우송왕손거) : 또 다시 그대를 전송하여 보내니
??滿別情(처처만별정) : 우거진 풀처럼 이별의 정이 가득하다 


백거이의 이 시는 들불도 다 태우지는 못하니,

봄바람 불면 다시 돋누나는 구절이 가장 유명하다.

시의 흐름이 매우 자연스럽지만 또한 한 구절 한 구절 세심하게 공들인 흔적이 엿보인다.

 

4.七步詩(칠보시)-  曹植(조식) (192~232)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시인)

일곱 걸음에 지은 詩

 

煮豆燃豆?(자두연두기)    콩을 삶는데 콩대를 베어 때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솥 안에 있는 콩이 눈물을 흘리네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는데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어찌 그리도 세차게 삶아대는가

 

조식은 위왕(魏王)조조의 둘째 아들인데 재주가 워낙 출중해 아버지인 조조에게서 총애를 받고,

형인 조비에게서는 심한 질시와 견제를 받았다.

조비는 왕위에 오른 후에도 조식을 견제하며 해치울 기회만 엿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조비는 조식에게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지으라고

명령하며 만약 그 동안에 시를 짓지 못하면 중벌에 처하겠다고 말한다.

이 때 조식이 지은 시가 바로칠보시, 조비는 이 시를 듣고

부끄러워하며 동생을 놓아주었다고 한다.

 

5.登?雀樓(등관작루)-   王之?(왕지환) (688∼742) 중국 당(唐)나라 시인.

자는 계릉(季陵).산시성[山西省(산서성)] 출생.

 

白日依山盡(백일의산진)     눈부신 해는 서산에 기대어 지려하고

黃河入海流(황하입해류)     황하는 바다를 향해 흘러 간다

欲窮千裏目(욕궁천이목)     천리 저 멀리까지 바라보고 싶어

更上壹層樓(갱상일층루)     다시 한 층 누각을 오르노라.

 

천리 저 멀리까지 바라보고 싶은시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한 층 더 누각을 올라가는 것이다.

더 멀리 보고 싶다면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일깨워주는 시.

 

6.九月九日憶山東兄弟(구월구일억산동형제)- 王維(왕유).(唐代 618~907).산시 성[山西省]

 

獨在異鄕爲異客(독재이향위이객) 홀로 타향에서 나그네 되니

每逢佳節倍思親(매봉가절배사친) 명절 때마다 고향생각 더욱 간절하도다

遙知兄弟登高處(요지형제등고처) 형제들 높은 곳에 올라

遍揷茱萸少壹人(편삽주유소일인) 산수유 꽂으며 놀적에 한 사람 적음을 알 것이니.

 

고향과 가족을 향한 떠도는 이의 그리움을 노래했다.

반복해 읽을수록 의미가 새롭게 곱 씹히는 시.

명절만 되면 고향 생각 더욱 간절하네란 구절은 천여 년 간

나그네의 그리움을 나타내는 명언으로 쓰였으며,

고향을 떠난 수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다.

명절 때마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는 중국인 특유의 문화가 배어있는 시.

7.關雎(관저)- 시경 중 제 1

詩經은 주(周)나라 초기(BC 11세기)부터 춘추시대 중기(BC 6세기)까지의 구전 민요 3,000여수 중에서

고대 성인 孔子(BC 551-BC 479)가 305편을 모아 편집한 중국에서 가장 오래 된 시집이다.

그는 이를 문학적 표현의 정형이라고 일컬었다.

詩經은 크게 풍(風)아(雅)송(頌)으로 분류되며 모두 노래로 부를 수 있다.

풍은 민간에서 채집한 노래로 모두 160편이다.

여러 나라의 노래가 수집되어 있다고 하여 국풍(國風)이라고도 한다.

 

詩經의 내용은 매우 광범위하여 통치자의 전쟁, 사냥, 귀족계층의 부패상,

백성들의 애정, 일상생활 등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형식상으로는 4언(四言)을 위주로 하며 부(賦) 비(比) 흥(興)의 표현방법을 채용하고 있다.

부는 자세한 묘사, 비는 비유, 흥은 사물을 빌려 전체 시를 이끌어내는 방법을 말한다.

이러한 수법은 후대 시인들이 계승하여 몇 천 년 동안 전통적인 예술적 기교로 자리잡았다.

 

詩經은 말이 詩集이지 엄밀히 말하면 노래가사다.

본디 유행하던 음악이었던 것인데 당시는 樂譜(악보)가 없었으므로

가락은 자취를 감추고 대신 가사만 남게 된 것이다.

305수의 詩가 실려 있는데 궁중 연회음악이 있는가 하면 廟堂(묘당)에서 제사지낼 때 연주되었던 음악,

또 각 지방에서 평민 간에 불려졌던 民謠(민요)들도 있다.

특히 民謠는 당시 서민들의 哀歡(애환)을 담고 있어 생활상을 연구하는 데에도 무척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孔子(공자)가 詩經을 애독하고 강조했음은 周知(주지)의 사실이다.

 

詩經 중 제1권 맨 첫머리 周南 '關雎'(관저)는 서정적이고 낭만적이며,

소박하고 진솔하여 친근한 어조를 띠고 있다.

군자와 숙녀의 지순(至純)한 사랑을 노래하며, 두 사람의 모습을 '노래하는 한 쌍의 물수리'로

그리고 그들이 어울려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강가의 모래섬에서 노닌다' 라는 비유적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다.

 

공자는 詩經의 시 관저를 ‘즐거우면서도 음탕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상하지 않는다’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라고 하였다.

 또한 공자는 詩經 삼백 편의 뜻을 한 마디의 말로 포괄한다면

'생각함에 사악함이 없다'는 것이다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 思無邪)

 

關關雎鳩 在河之洲 (관관저구 재하지주)꾸우꾸우 물수리새 모래섬에 정답듯이

窈窕淑女 君子好逑 (요조숙녀 군자호구)아리따운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이로다.

參差荇菜 左右流之 (참치행채 좌우류지)올망졸망 마름열매 이리저리 헤쳐찾듯

窈窕淑女 寤寐求之 (요조숙녀 오매구지)아리따운 아가씨를 자나 깨나 구하고저

求之不得 寤寐思服 (구지부득 오매사복)구하여도 얻지 못해 자나 깨나 생각하니

悠哉悠哉 輾轉反側 (유재유재 전전반측)아득하고 아득하여 이리 뒤척 저리 뒤척

參差荇菜 左右采之 (참차행채 좌우채지)올망졸망 마름열매 이리저리 따노라니

窈窕淑女 琴瑟友之 (요조숙녀 금슬우지)아리따운 아가씨 금을 타면 나는 슬을 타리

參差荇菜 左右芼之 (참차행채 좌우모지)올망졸망 마름열매 이리저리 골라내니

窈窕淑女 鍾鼓樂之 (요조숙녀 종고락지)아리따운 아가씨 종을 치면 나는 북을 치리

 

중국 최초의 시가문학으로 일컬어지는 시경은 수천 년 전의 시구임에도

아직까지 전해지는 명구가 많다.

시경 중 제 1수로 가장 유명한 <관저>는 중국 애정시 중에서도 후대의 영향력이 지대했던 시.

 

8.夏日絶句(하일절구)-   李淸照(이청조) (1084~1151)

중국의 여류시인 이청조의 시로 인생의 가치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항우는 유방과 천하를 놓고 다투다가 패하여 위기에 몰렸을때

강동(항우의 본거지)으로 후퇴하여 권토중래를 노리자는 의견을 거절한다.

강동의 자제 3천명을 이끌고 중원축록하고자 세상에 나왔으나

강동의 자제들이 거의 전사한 마당에 홀로 강동으로 돌아가느니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으로 우미인을 죽이고 스스로 끝까지 싸우다가 죽는다.

 

이청조의 시는 그러한 항우의 패기를 가지고 금나라와 싸울것을 독려하는 애국시로써

하일절구를 지었다고 하는군요.혹자는 이 시를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로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生當作人傑(생당작인걸) 살아서는 당연코 사람들 중 호걸이었고

死亦爲鬼雄(사역위귀웅) 죽어서도 역시 귀신들 중 영웅이리라

至今思項羽(지금사항우) 지금도 항우를 그리워함은

不肯過江東(불긍과강동) 그가 강동으로 달아나지 않았기 때문이로다.

 

중국의 여류시인 이청조의 작품으로 인생의 가치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사람은 살아서는 사람들 중의 호걸이 되어 국가를 위해 업적을 세우고,

죽어서도 국가를 위해 몸바쳐 귀신들 중의 영웅이 되라는

애국의 격정이 절제된 시어 속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

 

9.送杜少府之任蜀州(송두소부지임촉주)- 王勃(왕발)

왕발(王勃), 자는 자안(子安)이고 강주(絳州) 용문(龍門: 산서성 직산현)사람.

일찍이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을 정도고 문장에 재능이 있었다.

고종(高宗)의 여섯째 아들 패왕(沛王) 이현(李賢)의 수찬(修撰)을 지내는중 고종의 노여움으로 해직된

후 수년동안 사천지방을 유량하였다.

28세 때 교지령(交趾令)에 가다가 익사하였다.

그의 작품은 주로 정치적 좌절과 불평을 토로한 작품이 주류이고, 양형(楊炯), 노조린(盧照隣),

낙빈왕(駱賓王)과 더불어 초당사걸(初唐四傑)이라 부른다.

시인은 장안에서 사천으로 가는 친구 두소부를 전송하는 송별시(送別詩)이다.


두소부가 촉주로 부임하는 것을 전송함-왕발(王勃)

城闕輔三秦,(성궐보삼진),삼진이 둘러싸고 있는 장안 성궐에서
風煙望五津.(풍연망오진).바람과 안개 아득한 오진을 바라본다
與君離別意,(여군리별의),그대와 이별하는 이 마음 각별함은
同是宦游人.(동시환유인). 나 또한 벼슬살이로 떠돌기 때문일 터.
海內存知己,(해내존지기),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만 있다면
天涯若比?.(천애야비린).하늘 끝에 있어도 이웃과 같으리니.
無爲在?路,(무위재기노),헤어지는 갈림길에서
兒女共沾巾.(아녀공첨건).아녀자같이 눈물로 수건을 적시지 마세.

 

중국 송별시의 걸작. 시 속에 이별 당시의 슬픔이 절절히 전해진다. ‘

세상에 자기를 알아주는 친구만 있다면 하늘 끝에 있어도 이웃과 같으리니는 지금도 쓰이는 명구.

출처 : 용암
글쓴이 : 용암 원글보기
메모 : 좋은 자료 올려주신 용암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