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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절상이 순리다

namsarang 2010. 10. 13. 20:53
[동아광장/송의영]
 

위안화 절상이 순리다

 
 
미중 간 환율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강대국 간 환율 불협화음은 크고 작게 반복됐지만 이번엔 그 양상이 좀 심각하다. 대공황 이후 최대였다는 불경기의 회복이 영 더디기만 한데 실업률이 오랫동안 10% 근처에 머물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미국인의 자존심과 가계부에 큰 상처를 주고 있다. 그 와중에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의 정치판은 가관이다. 공화당은 의당 지난 공화당 정부와 월스트리트에 꽂혀야 할 비난의 화살을 버락 오바마 정부의 무능과 ‘사회주의 정책’으로 돌리려는 원색적인 사상전을 감행하고 있다. 코너에 몰린 민주당은 중국의 경상수지 흑자와 위안화 저평가에 그 화살을 되돌리려는 궁색한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국제금융시장의 맹주가 되기 위해 거대한 포석을 하고 있는 중국은 미국의 희생양이 될 의향이 전혀 없다. 원자바오 총리는 급격한 위안화 절상은 세계경제에 재난이 될 것이라는 거친 표현을 서슴지 않고 있다.

누구의 편을 들어야 하나. 가장 중요한 우방이지만 늘 남의 탓만 하면서 국제시스템을 입맛대로 뜯어고치려는 거만한 미국, 그리고 우리와 유사한 경제구조를 가진 이웃이지만 졸부의 거친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중국, 이 둘 사이에서 어느 한쪽에 선뜻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래도 공정한 심판이 되려면 현 국제통화제도의 특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환율전쟁, 두 거인의

그 하나는 제조업 제품의 수출을 중심으로 하고 있는 아시아 경제에서 달러가 결제통화로서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많은 아시아 국가에서 미국에 수출하는 상품은 물론이고 이웃 아시아 국가에 수출하는 상품까지 대부분 달러로 가격을 표시하고, 달러로 결제한다. 따라서 소폭의 달러 절하(자국 화폐 절상)도 작은 마진에 매달리는 제조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은 가급적이면 달러에 대한 자국 화폐의 환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이에 반해 미국은 달러를 세계 화폐가 아닌 미국의 화폐로 인식하고 있다. 미국의 통화정책은 전적으로 미국의 경제 상황에 달려 있는 것이지 다른 국가의 상황은 알 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큰 마찰 없이 작동하려면 상황에 따른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 만일 미국도 불황이고 아시아도 불황인 상황에서 미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일방적으로 금리를 인하한다고 하자. 이 경우에는 아시아가 달러를 사들이고 자국 화폐를 풀어 환율을 안정시키고 금리를 동반 하락시키는 것이 시스템 안정을 위해 바람직하다. 만일 아시아가 달러 절하를 방치해야 한다고 미국이 주장한다면, 즉 미국의 표현대로 ‘환율 조작’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는 수용할 수 없는 요구다. 불황에 허덕이는 이웃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더 큰 고통을 받을 것을 강요하는 것은 ‘환율조작’보다 죄질이 더 무거운 ‘이웃 거지 만들기’ 정책이다.

그러나 미국은 불황이지만 아시아는 호황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경기에 과열조짐이 있다면 금리를 인상하고 자국 화폐의 절상을 용인하면서 버블과 인플레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순리다. 더구나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아시아는 흑자를 경험하고 있다면 아시아 화폐의 절상은 글로벌 불균형을 시정하는 중요한 역할까지 수행한다.

G20 서울회의 돌파구 될까

중국은 현재 후자의 상황에 있다. 10%를 넘나드는 성장률, 국내총생산의 5%에 달하는 경상수지 흑자, 국내총생산의 50%를 넘는 외환보유액, 그리고 인플레와 주택가격 버블의 조짐,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환율을 방어해 경기를 유지해야겠다고 주장하는 것은 과욕이다. 또 미국의 환율 압력에 굴복하면 중국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10년’을 겪을 것이라는 주장은 멜로드라마에 가깝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엔의 절상이 아니라 버블의 붕괴가 직접적인 원인이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자본 이동을 통제하는 중국은 급격한 위안화 절상과 국부 유출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만일 국제금융 시스템의 맏형이 존재한다면 당장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우선 미국의 유치한 쇼비니즘을 꾸짖어야 한다. 현재 미국의 TV 방송에는 중국은 미국에서 일자리를 탈취해가는 강도이며 중국에 유화적인 정책은 반역이라는 식의 정치광고가 넘쳐난다. 이걸 보면 중국이 한 걸음 물러설 마음이 생기겠는가. 그리고 환율전쟁을 관세전쟁으로 확전하려는 미국의 시도를 강하게 비판해야 한다. 동시에 많은 국가와 연합해 중국이 위안화 절상을 용인하도록 압박해야 한다. 그런데 누가 미국과 중국의 맏형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한국이 이러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송의영 객원논설위원·서강대 교수·경제학 eysong@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