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
롯데호텔 무궁화
다섯 가지 맛이 나는 오미자 젤리 위에 얹은 전복, 늦가을 이슬을 맞고 향이 더욱 짙어진 송이를 가늘게 썰어 닭고기와 야채를 우려낸 국물에 담근 콩소메, 단군신화에 나오는 마늘과 김치를 넣은 쇠고기말이….
듣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이 음식들은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서울의 한식당 ‘무궁화’가 내놓은 코스 요리의 메뉴들이다. 무궁화는 원래 이 호텔 지하 1층에 있었으나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를 앞두고 최근 38층의 전망 좋은 곳으로 옮기면서 고급화했다.
롯데호텔이 1년여간 공들여 새로 단장한 이 음식점은 옛 반가의 상차림에 기반을 둔 코스요리와 전통차, 전통주, 한식에 어울리는 와인 컬렉션 등을 갖추었다. 도자기 전문업체 광주요의 그릇을 사용하며 간장 된장 소금 등 기본 재료부터 몸에 좋은 식자재로 정성껏 만든다고 한다.
지난주 열린 이 식당의 재개점 행사에는 이례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와 한식재단 정운천 이사장, 한국관광공사 이참 사장, 주한 외교사절단들이 참석해 축하했다. 김 여사는 이날 “국내 호텔의 한식당이 줄어들고 있어 안타까웠는데 한식당이 이렇게 좋은 위치와 시설에서 외국인의 입맛에 맞는 고품격 한식 요리를 선보인다니 앞으로 큰 사랑을 받고 더욱 번창하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호텔의 식당 하나 개점하는 데 이처럼 주요 인사들이 온 것은 그만큼 국내 특급호텔에 한식당이 드물기 때문이다. 서울시내 특1급 호텔 19곳 중 한식당을 운영하는 곳은 롯데호텔서울, 쉐라톤그랜드워커힐, 르네상스호텔, 메이필드호텔 등 4곳뿐이다. 반면 양식당은 17개, 일식당은 16개, 중식당은 15개나 된다.
호텔뿐 아니라 일반 식당 중에서도 해외 고위급 손님을 초대할 수 있는 고급 한식당은 손에 꼽을 정도다. 곧 세계 각국의 정상을 비롯해 1만여 명의 외국 수행원이 한국을 찾아오지만 정작 ‘한국의 맛’을 보여줄 수 있는 고급 식당은 거의 없는 셈이다.
호텔 관계자들은 “한식은 손이 많이 가고 식자재도 비싼데 음식값은 그만큼 받을 수 없어 이익이 나지 않는다”고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양식, 일식, 중식 등은 재료비나 만드는 노력에 비해 음식값에 거품이 있다는 것이고, 한식은 오히려 받아야 할 값을 못 받는다는 얘기다.
한식의 세계화 방법을 둘러싸곤 여러 가지 논란이 있다. 정통 한식을 보급할 것인가, 아니면 외국인 입맛에 맞게 퓨전요리를 활성화할 것인가 하는 논쟁이 대표적이다. 또 해외 한식당의 시설 첨단화를 먼저 지원할 것인가,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국내 식당들의 수준부터 높일 것인가, 일식과 사케, 양식과 와인처럼 한식에 어울리는 술은 어떻게 패키지화할 것인가 등 아직도 해결할 과제가 많다.
하지만 한식의 잠재력에 대해서는 국내외 음식·문화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발효식품이 많아 요즘 같은 참살이 시대에 어울린다는 것, 다양한 야채와 담백한 조리법을 사용해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는 것, 식혜 된장 홍삼 갈비 등 음식 하나하나에 오천년의 이야기가 담겨 감동을 줄 수 있다는 것 때문이다.
롯데호텔의 실험이 성공해 특1급 호텔에서도 한식당이 번창한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기 바란다. 프랑스 음식이나 일본 음식뿐만 아니라 한식이야말로 깊은 전통의 고급 음식이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한식 세계화가 성공하려면 우리부터 우리 음식을 귀히 여겨야 한다.
신연수 산업부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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