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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잊혀진 전쟁’ 한국전쟁 추모

namsarang 2010. 11. 15. 20:49

[특파원 칼럼/신치영]

 

‘잊혀진 전쟁’ 한국전쟁 추

 

 

11월 11일은 미국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이다. 국가의 부름을 받아 전쟁에 참가한 참전용사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국가 휴일이다. 11월 11일은 본래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이 항복하고 휴전조약에 서명한 날이다. 이듬해 우드로 윌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휴전의 날(Armistice Day)’로 선포해 1953년까지 제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만을 기리다가 1954년 ‘재향군인의 날’로 이름을 바꾸고 모든 전쟁의 참전용사를 기리기 시작했다.

이날에는 미국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재향군인들이 직접 참가하는 퍼레이드 행사가 벌어진다. 그중에서도 맨해튼 한복판 5번가에서 한나절 동안 진행되는 뉴욕 퍼레이드는 단연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행진이다. 올해 11월 11일에도 뉴욕 시민과 관광객 수만 명이 26번가에서 56번가까지 몇 km의 인도를 가득 메운 채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 반까지 행진을 지켜봤다. 현역 군인 등 관계자를 포함해 퍼레이드 참여 인원만 1만8000명에 이르렀고 NBC방송에서 2시간 동안 생중계를 하기도 했다.

1919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실시돼 올해로 91년째를 맞는 뉴욕 퍼레이드지만 올해 행사가 인상적인 것은 60주년을 맞은 한국전을 퍼레이드의 테마로 삼았기 때문이다.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멀리 제2차 세계대전부터 가까이는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참전용사까지 참가한 퍼레이드의 선두에 서서 시민의 환호를 받았다. 퍼레이드에 앞서 벌어진 개막행사에서는 미국 국기와 태극기가 함께 펄럭였으며 양국의 국가가 나란히 연주됐다.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 데이비드 패터슨 뉴욕주지사, 찰스 랭걸 뉴욕 주 연방 하원의원 등 유력인사들은 한결같이 한국전 참전용사의 희생에 대한 감사와 한국과 미국 간 강력한 동맹의 중요성 등을 언급했다.

이날 행사는 미국에서 한국전을 상기시키는 계기가 됐다. 미국에서 한국전은 흔히 ‘잊혀진 전쟁’으로 불린다. 총인원 180만 명이 전투에 참가해 5만6000여 명이 전사했지만 사실 한국전을 기억하는 미국인은 많지 않다. 교과서에도 한국전은 별로 다뤄지지 않는다. 얼마 전 한 미국인 한국전 참전용사가 “고등학교 교과서에 한국전 얘기는 고작 다섯 문단에 걸쳐 기술된다”며 “그래서 한국전은 ‘다섯 문단 전쟁’이라고 불린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이름도 잘 들어보지 못한 낯선 땅에서 목숨을 바쳐 싸웠는데도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했던 한국전 참전용사들은 뉴욕 재향군인의 날 퍼레이드에서 감개무량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가슴에 훈장이 달린 제복을 입고 퍼레이드의 선두에서 손을 흔들던 에드워드 버겐달 씨(79)는 “한국전 당시 해군으로 복무하며 인천상륙작전에 참여했다”며 “오늘 퍼레이드는 최근 몇 년간 중 가장 가슴 뿌듯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살바토레 스칼라토 한국전 참전용사회 뉴욕지부 회장(77)은 “한국전이 올해 60주년이 돼서 그런지 42차례 행사에 초청됐을 정도로 관련 행사가 많았다”며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한국전이 ‘잊혀진 전쟁’이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들 참전용사는 한결같이 한국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미국 등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발전한 데 대해 가슴 뿌듯하게 생각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오늘의 한국은 수많은 사람의 희생 덕분에 가능했는데도 너무 자주 이런 사실을 잊고 사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신치영 뉴욕특파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