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窓)/이런일 저런일

사랑의 매가 사라진 자리

namsarang 2010. 11. 13. 20:57

[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

 

사랑의 매가 사라진 자리

 

 

무위자연 ― 꽃, 이동진

 

 

 교사는 교단에 서서 학생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가르침이 유지되는 장소는 교단에 국한되지 않고 학교와 학교 바깥세상까지 확장 심화됩니다. 그래서 예전에는 학생이 학교 밖에서 탈선행위를 하지 않을까 걱정해서 교사가 조를 편성해 교외순찰을 했습니다. 학생이 무단결석하면 가정방문을 하고, 몸이 아파 학교에 나오지 못하면 학생과 함께 병문안을 가고, 집안에 우환이 생기면 찾아가 함께 슬퍼하기도 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교육계에서 이런 풍토가 사라지고 학교 폭력과 체벌 문제가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습니다.

교사는 ‘교편을 잡는다’는 말로 자신의 직업을 에돌아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편이란 학생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로서의 막대기이지만 옛날 서당 훈장님 손에 들려 있던 회초리와 크게 의미가 다르지 않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회초리는 사라지고 몽둥이와 폭력을 휘두르는 교사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세상에는 여전히 ‘사랑의 매’로 제자를 올바르게 인도하고 싶어 하는 선생님이 많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아이를 서당에 맡길 때 아버지가 회초리 한 다발을 훈장에게 전달하는 초달문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초달이 회초리를 의미하니 현대의 교편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습니다. 서당시대에는 체벌이 관행적이고 보편적인 교육수단으로 인정받았지만 훈장이 제자에게 회초리를 때릴 때에도 중요한 격식을 지켜 상호 존중심을 잃지 않았습니다.

 

주의와 경고를 주어도 개선되지 않는 제자를 불러내 훈장은 종아리를 걷게 하고 옆으로 서게 합니다. 잘못을 고지하고 몇 대의 종아리를 때릴지 예고한 뒤에 제자가 직접 헤아리게 합니다. 옆으로 선 제자의 종아리를 때리니 제자는 선생과 얼굴을 마주하며 인격적인 모욕감을 느끼지 않고 훈장은 제자의 표정을 보며 감정적으로 더욱 분노하게 되는 일이 없습니다. 사소한 관행 같지만 상호존중심이 바탕에 깔린 교육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교편이 사라진 교육현장에는 깊은 모순과 혼돈이 공존합니다. 교사에 대한 존경심을 잃은 아이들의 방만한 태도, 훈육의 방편을 잃은 교사들의 방관과 방기는 교육현장을 무관심과 도외시의 난장으로 만들 우려가 큽니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랑과 상호존중심이 회복되지 않는 한 체벌금지에 대한 어떤 대안도 근본대책이 될 수 없습니다. 남을 가르치는 행위는 무한사랑을 바탕으로 하고 남에게 배움을 받는 일은 무한감사를 바탕으로 합니다.

모든 교육의 출발점은 학교가 아니라 가정입니다. 태어나서 학교에 갈 때까지 일차교육이 이미 가정에서 이루어진 뒤임에도 부모는 아이의 모든 문제를 학교에 일임하거나 떠넘기려는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정교육을 무시하는 학교교육, 학교교육을 무시하는 가정교육은 반편이 교육이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체벌이 사라지고 꾸짖음과 훈육이 사라진 시대, 그것은 곧 어른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어떤 어른도 선뜻 회초리를 들지 않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자라날까요.

                                                                                                                                                                                                                 박상우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