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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꿈 몇 개나 있나요?

namsarang 2010. 11. 12. 22:20
[커버스토리]

 

                                   미래의 꿈 몇 개나 있나요?

 

 

■ 실업계고 첫 ‘골든벨 소녀’ 김수영 씨의 ‘73가지 꿈 도전기’

 

 



김수영 씨의 별명은 ‘지구소녀’다. 지구별 곳곳의 아름다움을 탐험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그는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난다. 캄보디아에서 만난 소녀 ‘소파’와 함께. (왼쪽 사진)

로열더치셸의 윤활유 카테고리 매니저로 일하는 김 씨가 최근 영국 런던에서 열린 고성능 자동차 모터쇼 MPH의 로열더치셸 부스에서 동료 직원과 포즈를 취했다.(오른쪽 사진) 사진 제공 김수영 씨

#프롤로그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의 꿈은 몇 개입니까. 꿈을 마지막으로 생각해본 적이 언제입니까. 꿈을 적어본 적이 있나요. 아니 난데없이 웬 꿈 이야기냐고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고요.

꿈이 참 많은 한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는 5년 전 갑작스러운 암 진단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나갔습니다. 적어보니 모두 73개나 되더랍니다. 지금까지 이 중 33개의 꿈을 이뤘습니다.

얼마 전 그는 저에게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에서 서른 번째 생일을 맞겠다”며 e메일을 보내왔습니다. 탄자니아로 가는 비행기표까지 이미 구해 놓았더군요.

영국 런던에서 세계 최대 에너지회사인 로열더치셸의 카테고리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김수영 씨(29). 자신의 꿈이 뭔지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는 묻습니다. “꿈이 몇 개냐”고. 그리고 “당장 꿈을 적어보라”고 말합니다

 

 
#프롤로그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의 꿈은 몇 개입니까. 꿈을 마지막으로 생각해본 적이 언제입니까. 꿈을 적어본 적이 있나요. 아니 난데없이 웬 꿈 이야기냐고요.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고요.

꿈이 참 많은 한 젊은이가 있습니다. 그는 5년 전 갑작스러운 암 진단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적어나갔습니다. 적어보니 모두 73개나 되더랍니다. 지금까지 이 중 33개의 꿈을 이뤘습니다.

얼마 전 그는 저에게 “아프리카 최고봉 ‘킬리만자로’에서 서른 번째 생일을 맞겠다”며 e메일을 보내왔습니다. 탄자니아로 가는 비행기표까지 이미 구해 놓았더군요.

영국 런던에서 세계 최대 에너지회사인 로열더치셸의 카테고리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김수영 씨(29). 자신의 꿈이 뭔지 모르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그는 묻습니다. “꿈이 몇 개냐”고. 그리고 “당장 꿈을 적어보라”고 말합니다

 

○ 단 하나의 꿈도 허락하지 않던 어린 시절

전남 여수에서 자란 김 씨는 처음부터 꿈 많은 젊은이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김 씨가 어렸을 때 사업에 실패한 뒤 막노동으로 생계를 이어갔고 어머니는 건물 청소를 했다. 4남매 중 둘째인 그에게 꿈은 사치였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였어요. 하루하루 먹고사는데 급급한 사람들뿐, 주변에 ‘꿈’을 말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가난한 집과 답답한 학교가 싫었던 중학 시절. 반항심은 커졌고 차츰 문제아가 돼갔다. 술 담배는 기본이고 폭주족 오빠들과 어울리며 가출하기도 여러 번. 어느 날 예쁘다고 신고 간 부츠를 창밖으로 내던진 선생님에게 반항하며 그는 학교와 집을 떠났다. ‘이번에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거리를 전전하기 3개월째 서태지의 노래를 들었다.

‘아직 우리는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 자 이제 차가운 눈물을 닦고 컴백홈∼’

3개월 만에 엄마와 통화하고 집에 돌아왔지만 학교에선 이미 퇴학처분이 내려져 있었다. 검정고시를 거쳐 실업계 고교에 진학했지만 역시 꿈을 찾긴 어려웠다. 자격증 따고 취업해 밥숟가락 하나 덜어주는 것이 학교와 집에서 그에게 바라는 최선이었다.

길이 보이지 않던 때 신문에서 이스라엘군이 쏜 총에 맞은 팔레스타인 어린아이를 안고 오열하는 아버지의 사진을 봤다. “저는 스스로 전쟁터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실제 끔찍한 전쟁터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그들에 비하면 저는 힘든 것도 아니었어요. 저에겐 여수의 삶이 전부였고 그런 세상이 있는지 몰랐거든요. 이 넓은 세계의 변화를 직접 보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면 얼마나 멋질까.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최초의 꿈이 생겼다. 기자가 되려면 명문대를 나와야 한다는 독서실 아저씨 말에 그는 무작정 공부에 몰두했다. 가르쳐주는 사람도, 교재도 없어 남이 버린 문제집을 지우개로 지워서 공부했다. 첫 수능 모의고사는 400점 만점에 110점. 어느 대학도 갈 수 없는 처참한 점수였지만 서너 시간만 자며 노력한 끝에 마침내 수능 375점을 맞고 연세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KBS TV ‘도전 골든벨’에서 실업계고 출신으로 골든벨을 처음 울리며 장학금을 받아 학비 걱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

대학 1학년이던 2000년 동아일보 ‘동아닷컴 e포터’라는 대학생 리포터로 선발됐다. “기자가 제 꿈이었기에 정말 열심히 했어요. 기사를 참 많이 썼는데 36개가 동아닷컴에 출고됐고 ‘동아닷컴 올해의 기사상’을 받기도 했지요. 그렇게 1년 활동하고 나니 생각이 바뀌었어요. ‘세상의 변화를 전달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직접 변화를 만들어야겠다’고요.”





○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73가지

공부, 아르바이트, 연애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치열한 대학생활을 보낸 뒤 2005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서울지점)에 입사했다. 성공의 탄탄대로가 기다리던 그때 건강검진에서 암세포가 발견됐다. “너무 억울했어요. 내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데.”

수술은 다행히 성공적이었지만 정신적 후유증이 컸다.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바뀌었지요. 죽음이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하나씩 적어봤어요.”

모두 써보니 73가지. 중요도와 긴급한 정도를 점수로 매기고 정렬했다. 첫 번째 꿈은 ‘한국을 떠나 세계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내 인생 스물다섯. 인생의 첫 3분의 1(25세까지)을 한국에서 살았으니 두 번째 3분의 1(26세부터 50세까지)은 세계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나머지 3분의 1(51세부터)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에서 살겠다 다짐했어요.”


결국 1주일 만에 9개월 동안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내고 영국으로 날아갔다.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 석사과정에 입학하고 현지 취업을 준비했다. 수백 번의 이력서를 보낸 끝에 2007년 세계 최대 에너지 회사인 로열더치셸에 입사했다.

김 씨에게 꿈 리스트는 그의 삶을 이끌어주는 이정표이다. 2006년에는 라틴아메리카 여행에 도전했다.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젊은 시절 남미 여행을 다룬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본 뒤 남미는 그의 로망이었다. 과테말라에서 스페인어 연수를 하고 멕시코, 온두라스를 거쳐 아르헨티나 브라질까지 남미와 사랑에 빠졌다.

○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누군가의 꿈이 된다”

2010년은 그에게 더욱 특별한 해이다. 큼지막한 꿈 여러 개를 이뤘기 때문이다. ‘부모님 집 사드리기’도 그중 하나였다. “부모님이 몸에 골병이 나도록 고생하며 자식 넷을 키웠는데 환갑이 되도록 집 한 채가 없는 것이 정말 안타까웠어요.”

회사를 다니면서도 3년간 부업으로 번역을 하며 돈을 모으고 대출도 받았다. 땅을 산 후 아버지 손으로 직접 집을 지었다. 평생 남의 집만 짓던 아버지는 여수에 스스로 집을 지으면서 너무 감격해 매일 눈물을 흘리며 ‘나는 기적을 믿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책 쓰기’도 올해 달성했다. 6개월간 집필한 끝에 그의 꿈을 향한 여정을 담은 책이 올 4월 말 출판된 것.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 봐’는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6개월 만에 1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저처럼 꿈조차 꾸기 어려운 환경의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고 싶어 책을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해외 취업에 관한 조언을 담은 책을 쓰려 했는데 쓰다 보니까 힘들었던 과거의 부끄러운 얘기까지 모두 털어놓게 됐어요. 그래서 더 많은 사람이 용기를 얻는 것 같아요.”

김 씨는 1일 tvN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 출연해 그의 인생과 꿈 이야기를 들려줬다. 목표기간 2030년으로 삼은 ‘오프라 윈프리 쇼 같은 무대를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과 삶을 나누기’의 꿈을 앞당겨 성공한 것이다.

○ ‘꿈의 파노라마’

2011년에는 새해 ‘킬리만자로 등반’에 성공한 뒤 더 원대한 꿈을 실현할 계획이다. 런던에서 서울을 육로로 여행하며 사람들의 꿈을 찍는 ‘꿈의 파노라마’ 프로젝트. 내년 6월부터 최소 6개월에서 최대 1년을 계획하고 있다. “여행서 만난 사람들의 꿈을 인터뷰하고 꿈을 이룬 사람들을 만나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상 사진 글로 담을 계획이에요. 시각장애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 그라민은행을 만든 무함마드 유누스, 전 재산을 기부하기로 한 중국의 거부 천광뱌오() 같은 사람들을 만나 꿈 얘기를 들어볼 거예요.”

그의 꿈을 키워준 사회에 꿈을 되돌리는 작업도 이미 시작됐다. ‘장학재단 만들기’가 그것. 그는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의 인세 10%를 살레시오 근로청소년회관에 기부하고 있다. 비행청소년들의 심리치료를 위한 프로그램도 개설했고 사회 진출을 앞둔 청소년 10명에게 멘터를 연결해 줬다. “저도 장학금을 받았기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모두가 저처럼 운이 좋은 것은 아니거든요. 돈이 없어 배움의 기회를 못 얻고 있는 많은 아이에게 기회를 주고 싶어요.”

#에필로그

제가 런던의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던 2007년 가을 낯선 e메일을 한 통 받았습니다. 런던에서 회사를 다니던 김 씨가 감기에 걸려 쌍화차 끓이는 법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제 개인 블로그를 보고 보내온 e메일이었습니다. 얼마 후 런던 시내에서 그를 만나 많은 얘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꿈을 전파하는 재주가 있었고 그래서 주변에는 늘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쳤지요. 제가 귀국한 뒤에도 연락은 이어졌고 그가 종종 한국에 들어올 때면 만나 책 출판준비 등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처음 볼 때부터 ‘참 대단한 친구구나’ 생각했지만 제가 그를 인터뷰해 기사를 쓰는 날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 몰랐습니다. 그는 “누군가 내 이야기를 읽고 꿈 바이러스에 전염된다면 정말 보람 있겠다”고 했습니다. 더 늦기 전에 저도 잊고 있던 꿈을 써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 김수영 씨가 꿈을 이루는 비법은
영감→믿음→의지→열정 4단계 과정으로 상상하고 말하고 쓰고 실천하라


 ‘상상하고 말하고 쓰고 실천하라.’

김수영 씨의 책 제목은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이다. 하지만 꿈을 쓴다고 해서 당장 꿈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면 꿈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김 씨는 ‘영감→믿음→의지→열정’의 4단계 과정으로 꿈의 달성을 설명한다. “먼저 ‘무엇을 하고 싶다’, ‘되고 싶다’ 이런 생각을 하는데 책이나 주변 사람 또는 경험을 통해 영감을 받죠. 예를 들면 축구 경기를 보다가 ‘나도 박지성 같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처럼요.”

꿈이 생긴 뒤에는 믿음이 필요하다. “믿음이 없으면 금방 그 꿈을 포기하거든요. 이때 상상만 말고 말해보는 것이 좋아요. 주변 사람에게 꿈 얘기를 하면 ‘축구를 배우려면 이런 재능이 필요하다’, ‘어떤 클럽을 찾아가라’처럼 구체적인 조언을 들을 수 있어요.”

이제는 자신의 꿈을 써봐야 한다. 김 씨는 “꿈을 쓰는 것은 집 살 때 계약서를 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꿈은 머릿속에만 머물지 않고 글로 쓰는 순간 구체적인 목표가 된다. 목표를 아무리 잘 세워도 실천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법. 그러나 노력하다 보면 힘들어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게 마련이다. 김 씨는 이때 꿈에 대한 ‘열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꿈을 이루는 것은 결국 ‘상상하고 말하고 쓰고 실천하면서 영감-믿음-의지-열정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과정’이다.

김 씨는 또한 “주변에서 꿈을 이루도록 도와주고 조언해줄 멘터를 찾으라”고 권한다. 김 씨는 1999년 ‘도전 골든벨’ 출연 때 진행자였던 손미나 전 아나운서를 멘터로 삼고 있다. “미나 언니는 제가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방송국에 초대하고 밥도 사주며 좋은 조언자가 돼줬어요. 이후 언니는 프리랜서 선언을 하고 여행 작가가 됐고 저는 런던에서 취업해 연락이 뜸해질 쯤 2008년 3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여행길에서 거짓말처럼 우연히 언니를 다시 만났어요. 그 이후 언니는 작가로서 또 인생선배로서 정말 제 인생의 멘터가 됐어요. 언니가 제 꿈을 이루는 데 힘이 되준 것처럼 저도 후배들에게 좋은 멘터가 되고 싶어요.”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