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수]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일
‘버킷 리스트(Bucket List)’라는 영화가 있다. 죽음을 앞두고 암병동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자가 병원을 탈출해 생의 마지막 순간들을 즐기기 위해 유쾌한 여행을 떠난다는 이야기다. 흑인 자동차 정비사 카터(모건 프리먼)와 백인 억만장자 에드워드(잭 니컬슨)는 너무나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지만 죽기 전에 그동안 못 해본 일들을 해보자며 의기투합하고 버킷 리스트(버킷은 ‘죽다’는 뜻의 속어인 ‘kick the bucket’에서 나왔다)를 만든다. 문신하기, 스카이다이빙, 카레이싱,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
해보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이루면서 이들은 삶의 의미와 소중함, 인생을 알차게 사는 게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두 명배우의 연기도 기억나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잔잔한 감동이 와 닿았던 게 머릿속에 떠오른다.
지난주 주목을 끄는 뉴스가 하나 있었다. 올 7월 1090만 달러(약 120억 원)의 로또에 당첨된 캐나다의 한 70대 부부가 4개월 만에 이 돈을 모두 이웃에게 나눠준 것이다. 주인공은 앨런 라지(75)와 바이올렛 라지(78) 부부. 남편이 용접공, 아내는 미용실과 초콜릿 공장에서 일하며 평생 검소한 생활을 해온 이 부부는 복권에 당첨된 뒤 1주일 동안 어떻게 쓸 것인지 의논하고 2쪽짜리 ‘기부 리스트’를 작성해 그대로 실천했다. 자신들에게 꼭 필요한 2%의 돈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지역 소방서, 교회, 구세군, 병원 등 도움이 필요한 수십 개의 단체에 내놨다.
이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 주목을 받자 이들은 “원래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쉬움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소박한 노부부의 마음 씀씀이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복권에 당첨된 상당수의 인생이 너무나 많은 돈 때문에 불행하게 끝나는 것을 생각하면 이 노부부야말로 돈의 의미를 제대로 헤아린 분들이 아닐까 싶다. 내게 그런 당첨금이 주어진다면 과연 돈을 모두 내놓을 수 있을지….
‘아름다운 리스트’를 적은 사람은 또 있다. 세계 최대 에너지 회사인 로열더치셸에서 일하는 김수영 씨(29)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실업계고 출신으론 처음으로 KBS TV ‘도전 골든벨’에서 골든벨을 울려 세상에 알려진 인물이다. 어릴 적 가출도 하며 방황하던 김 씨는 ‘세상을 변하게 만들자’는 꿈을 키우며 악착같은 삶을 살아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기자의 꿈도 가져 동아일보에서 대학생 리포터로 활약하며 ‘동아닷컴 올해의 기사상’도 받은 적이 있다.
2005년 암세포라는 불청객이 찾아오자 김 씨는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써 나갔다. 적다 보니 어느새 73가지나 됐다. 고향에 부모님 집 사드리기, 뮤지컬 무대에 서기, 육로로 실크로드 여행하기, 고아들을 입양해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기, 사람들과 교류하며 열정을 나누기…. 수술이 성공해 암의 공포를 떨친 뒤 그는 차근차근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해나갔고 1일 tvN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 출연함으로써 자신의 꿈 중 33번째를 달성했다. ‘오프라 윈프리쇼 같은 토크쇼를 통해 사람들과 감동과 삶을 나누기’의 꿈을 이룬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꿈을 꾼다. 위에서 얘기한 사람들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다. 다만 그들이 비범한 것은 꿈을 실천하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꼭 죽음이 다가오지 않아도 이 늦가을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놓고 하나하나 실천해 보는 건 어떨까. 김수영 씨의 인생 스토리는 12일자 동아일보 위크엔드면에서 자세히 소개할 예정이다.
김상수 산업부 차장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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