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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자 ‘11·23’

namsarang 2010. 11. 27. 22:55
[오늘과 내일/방형남]

 

                                    잊지 말자 ‘11·23’

 

 김정일 김정은 부자는 25일 밤 샴페인을 터뜨렸을 것 같다. 연평도를 향해 170발의 포탄을 쏜 뒤 이틀 만에 눈엣가시 같던 남한 국방장관이 날아갔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천안함 공격 때는 남한의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경질됐다. 김정일 부자는 의기양양해 다음번에 제거할 대상을 논의했을지도 모른다.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남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대부분 김정일 부자를 즐겁게 하는 것들이다. 그들은 위성 TV 화면을 통해 남한으로부터 ‘전과() 보고’를 받고 있다. 해병대 2명 전사, 민간인 2명 사망. 민가 33채 파괴. 북한군은 남한 당국의 친절한 발표와 남한 언론의 발 빠른 보도 덕분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전과를 확인할 수 있다.

국방장관 날린 , 다음은 누구?

우리 군은 K-9 자주포 80발을 쏘았다고 주장했지만 인공위성을 통해 찍은 북한의 피해상황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분노를 잠재울 만큼 그쪽의 피해가 크지 않은 모양이다. 현재까지는 북한의 일방적인 승리다. 일본의 마이니치신문은 최근 평양을 방문한 재일 한국인의 말을 인용해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선제공격을 받았지만 격렬하게 반격해 대승리를 거뒀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 군의 대비상황도 빠짐없이 북한으로 넘어가고 있다. 북한은 연평도에 배치된 대북 타격 무기가 K-9 6문뿐임을 알게 됐다. 해병대 장교는 어이없게도 K-9을 겨냥한 북한 포탄 탄착지점까지 언론에 상세하게 공개했다. 신문과 방송은 경쟁하듯 북한이 발사한 포탄이 연평도 어디에 떨어졌는지 지도를 그려가며 전했다. 천안함 폭침 때는 군사기밀 유출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이번에는 정부, 군, 언론 모두 아무 생각이 없다. 북한은 연평도를 손바닥처럼 알게 됐다. 포탄을 명중시키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도 파악했다. 북한이 다시 연평도를 공격하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끔찍한 사태다.

6·25전쟁 이후 처음으로 남한 영토를 포격하는 도발을 저지른 북한은 희희낙락하는데 피해자인 남한 국민은 침울한 상황이 이어져서는 안 된다. 북한이 연평도 공격을 후회하게 만들지 않으면 추가도발을 막을 수 없다. 민간인까지 공격하도록 명령을 내린 북한 지도부에 고통을 주지 못하면 또 북한에 당할 수밖에 없다.

 

전쟁 중 장수를 교체한 이명박 대통령의 결단이 새로운 출발이 돼야 한다. 이 대통령은 천안함 폭침 나흘 뒤 백령도 현장을 찾았다. 이번에는 북의 포격 당일 저녁 합참 지휘통제실을 방문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의 도발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줬지만 군이 부응하지 않아 초강수를 동원했다고 해석하고 싶다.

도발 후회하게 만들어야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많다. 군사적 대비와 함께 북한을 응징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일부 고위 당국자는 이번에는 독자적인 대북()제재 카드를 꺼내지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잘못된 판단이다. 연평도 포격이 천안함 공격보다 가벼운 도발이란 말인가. 개성공단 폐쇄도 불사()하겠다는 강단을 보여야 한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에 부정적인 정부의 태도도 미덥지 않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25일 언론 브리핑에서 “안보리의 성명 채택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천안함 때보다 훨씬 화끈한 안보리 성명을 받아내기 위해 힘쓸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망신을 당한 뒤 ‘리멤버 펄하버(Remember Pearl Harbor)’를 가슴에 새기고 철저히 준비해 결국 일본을 패퇴시켰다. 11월 23일을 잊지 말아야 북한의 도발을 극복하는 길이 열린다. 안보를 소홀히 하면 우리가 피땀 흘려 쌓은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