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
맑은 차 한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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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는 소림사에서 9년 동안 정진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잠을 자지 않겠다고 서약했고, 오랫동안 그것을 지켰습니다. 먹지도 않고, 웃지도 않고, 눈을 깜빡이지도 않는 완전한 사람. 하지만 어느 날,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깜빡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공든 탑이 무너진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칼을 가져다 자신의 눈꺼풀을 베어내 땅에 묻었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눈은 더 이상 감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뒷날, 그의 눈꺼풀을 묻은 곳에서 사람 눈꺼풀 모양의 새순이 달린 관목이 자라났습니다. 새순을 따 달여 먹으니 잠이 달아나고 정신이 맑아졌습니다. 그것이 차(茶)의 유래가 되고 눈꺼풀 없는 달마도(達磨圖)의 근거가 되었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고려 시대의 문장가이자 차의 달인이었던 이규보는 차의 맛을 일컬어 ‘도의 맛’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조선의 차 문화를 대표하며 다성(茶聖)으로까지 불리던 초의선사도 다선일미(茶禪一味)라고 하여 차와 선이 별개의 세계가 아님을 강조하였습니다. 차를 통한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의 우정, 그리고 다산 정약용과의 친분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길게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차를 두고 형성된 그들의 고매한 세계를 다선삼매(茶禪三昧)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차를 마시는 행위에는 현대적 삶에서 쉽게 경험할 수 없는 세 가지 특징이 깃들어 있습니다. 우러남, 맑음, 그리고 멈춤이 그것입니다. 차가 우러나는 과정, 맑은 차를 대하는 과정, 차를 마시기 위해 순간순간 동작을 멈추는 과정이 다도의 전체적인 사이클을 형성합니다.
차가 우러나는 걸 기다리는 과정, 다시 말해 차를 우려내는 과정은 내면적 고해의 시간을 닮아 있습니다. 맑게 우러난 차를 대하는 과정은 한없이 정화된 진자아(眞自我)를 마주하는 시간을 닮아 있습니다. 그리고 차를 마시기 위해 중간중간 동작을 멈추는 과정은 자아를 돌아보는 과정을 닮아 있습니다. 그러하니 초의선사와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이 어찌 다선일미와 다선삼매를 공감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맑게 우러난 차 한잔을 마신다는 건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자아를 우려내고 자아와 마주 보고 자아와 합일하는 과정이 차를 마시는 행위에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런 내재성 때문에 전통차를 마시는 과정이 번거롭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천만의 말씀. 그 정도의 정화된 습관은 우리의 일상이 대부분 중독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감안하면 참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할 반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를 마시는 여유, 인생을 맑게 마시는 삼매경입니다.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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