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식 신부(원주교구 횡성본당 주임)
꿈은 이뤄집니다.
2002년 한국과 일본에서 열렸던 월드컵 축구를 할 때 우리는 4강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냈고, 지난번 여자 월드컵에서는 더 큰 꿈을 이뤄냈습니다. 이렇게 큰 꿈이 아니고 아주 작은 꿈이라도 그것이 허무맹랑하고 불가능한 망상 같은 꿈만 아니라면 그 꿈은 이뤄집니다.
꿈이 이뤄지듯이 기적도 이뤄질 수 있을까요? 바로 나에게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 말씀을 저는 이렇게 묵상했습니다. 평범한 시골 처녀인 마리아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남자인 요셉과 결혼해 아들딸 낳고 행복하게 오순도순 사는 것이 바람이요 꿈이었습니다.
과분한 꿈도 아닌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그냥 소박하고 평범한 꿈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느님의 사자인 천사가 나타나 이 소박한 꿈을 완전히 부숴버립니다.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해 아들딸 낳아 행복하게 살고 싶은 꿈을 포기하고 하느님이 일러주는 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약혼자인 요셉도 모르게 남자 없이 아기를 임신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그 약혼자 요셉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혹시 약혼자가 마음이 너무 착해서 가만 놔둔다해도 시집가기 전에 처녀가 임신한 걸 보면 동네 사람들이 가만 놔두지 않을 것입니다. 당시 법에 따라 돌로 쳐 죽일 것입니다. 구세주 아기 예수를 잉태하라고 하지만 아기를 낳기도 전에 돌에 맞아 죽을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마리아는 여기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약혼자와 결혼해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고 싶은 자신의 꿈을 이룰 것인가? 아니면 꿈을 포기하고 돌에 맞아 죽으면서까지 하느님 뜻을 따를 것인가? 선뜻 결정하기 어려운 기로에서 마리아는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응답함으로써 자신의 꿈을 버리고 하느님의 길을 선택합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남자와 동침하지도 않았는데 뱃속에 아기를 임신한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기적이 또 있습니까? 눈먼 이를 고쳐주신 기적보다, 빵 5개로 5000명을 먹인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자신의 꿈을 포기하자 꿈보다 훨씬 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만일 마리아가 자신의 꿈을 이루려고 하느님 계획을 거절하고 요셉과 보통 사람처럼 결혼해 아들딸 낳아 살았더라면 꿈은 이뤘을지 몰라도 기적은 이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골룸바는 자신의 어머니가 구질구질하게 산다고 생각해 '난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서른이 넘어 자신의 자식을 키워보면서 어머니 사랑을 깨닫고 나서 "엄마, 나도 엄마처럼 살래. 엄마, 고맙습니다"하고 고백했습니다. 엄마와는 다르게 살겠다는 자신의 꿈을 버리고 엄마처럼 살겠다고 계획을 바꿈으로써 그 딸은 이제 어머니 마음을 아는 자식, 사람다운 사람, 비로소 여자다운 여자, 엄마다운 엄마가 될 것입니다.
자신이 하는 일이 분명히 하느님 뜻과 거리가 먼 것임을 뻔히 알면서도 그냥 밀고 나가는, 자신의 꿈만을 향해 나가는 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혹시 자신의 꿈은 이룰지 몰라도, 또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기적을 일으킬 수는 없습니다. 기적은 하느님 뜻을 위해 인간의 꿈과 인간적 요소를 포기할 때 하느님이 내리시는 최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가 하면 자신이 손해를 볼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 뜻이기 때문에 용감히 그 길을 가는 진짜 신자도 있습니다. 자신의 꿈이 이뤄졌지만 그것이 하느님 뜻에 어긋난 것임을 알고는 바로 길을 바꾸는 참 신자도 있습니다. 여러분도 하느님 기적을 얻기 위해 꿈을 버릴 수 있습니까? 어느 신부님은 죽도록 사랑했던 처녀가 있었는데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싶은 꿈을 버리고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됐고, 후에 성덕이 뛰어난 신부님이 되셨습니다. 그 신부님 안에서 하느님의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세속적 꿈과 하느님이 주시는 기적은 동시에 일어날 수 없습니다. 세속적 꿈을 버리지 않으면 하느님이 주시는 기적을 바랄 수 없습니다. 마리아처럼 세속적인 꿈을 버림으로써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대단한 기적이 이번 성탄절에 내 안에 일어나기를 감히 기도해 봅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