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3주일-구세주 오심의 기쁨 미리 맛보는 날

namsarang 2010. 12. 12. 11:55

[생활속의 복음]

 

대림 제3주일-구세주 오심의 기쁨 미리 맛보는 날

박용식 신부(원주교구 횡성본당 주임)

 

   인간은 현재를 살면서도 미래의 일을 앞당길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당장은 기쁜 일이 없으면서도 미래에 올 기쁨을 미리 맛보며 기뻐할 수 있고, 지금 당장은 고통스러운 일이 없으면서도 미래의 고통을 미리 맛보아서 지금 고통을 겪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들이 주사를 맞기 전에 벌써 울어버리는 것은 곧 닥쳐올 따끔한 아픔을 미리 느끼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고통이 없는데도 미래에 올 고통을 미리 느끼고 아파하기 때문입니다. 대중 앞에만 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떨리는 울렁증이 있는 사람은 대중 앞에 나가기도 전에 벌써 가슴이 두 근 반 세 근 반 콩콩 떨리는 증상을 느낍니다. 이것은 곧 닥쳐올 수줍음과 부끄러움을 미리 맛보기 때문입니다. 심리학자들은 "불안이란 현재의 고통에 대한 느낌이 아니라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고통을 미리 맛보고 느끼는 감정"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은 미래의 고통을 미리 느끼는 것처럼 미래의 기쁨과 행복도 미리 느낄 수 있습니다. 내일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기로 되어 있으면 내일 올 기쁨을 벌써 오늘부터 맛보고 행복해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삶이 고통스러워도 내일 올 기쁨 때문에 오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소풍 가기 전날은 잠을 설치곤 했습니다. 미래에 올 즐거움을 미리 맛보고 느끼기 때문이었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하는 일은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줄 모릅니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미래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쁨이 되고 자신에게도 기쁨이 될 테니까 현재의 고통조차도 기쁨으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에도 그대로 해당하므로 "진정한 신앙인은 미래에 확실히 올 구원의 기쁨을 지금 벌써 느끼기에 오늘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오히려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1독서에서도 이사야 예언자는 귀양살이를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아직은 고통스럽겠지만 머지않아 주님이 해방시켜 고통과 불행을 없애 줄 테니 기뻐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아직은 구세주의 세상인 지상 천국이 오지 않았지만 곧 올 하느님 나라를 미리 맛봄으로써 고통 중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독서에서도 시련을 당하고 있는 신자들에게 머지않아 올 기쁨을 생각해 희망을 갖고 참고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복음 말씀에서는 먼 옛날부터 내려오던 희망을 직접 현실에서 보여주었습니다. 즉 눈먼 이, 귀먹은 이, 다리저는 이들이 치유되고, 라자로 같이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가난하고 소외당하던 사람들이 사람 대접을 받음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체험합니다.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의 이런 기쁜 소식을 듣고는 감옥에서 죽음을 기다리면서도 기쁨을 감출 수 없어 눈물까지 흘립니다.
 
 예수님은 이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런 나라로 가자고 부르십니다. 예수님의 이런 부르심에 인도돼 고통 중에도 큰 기쁨을 누리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미래에 주님이 주실 구원과 행복을 생각하고 그 기쁨을 미리 맛봄으로써 고통 중에도 오히려 참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10여 년을 누워 지낸 환자인 요셉 할아버지는 병자 영성체를 하러 간 나의 손을 잡고 "저는 10년이나 중풍으로 누워서 고통을 당하며 살고 있지만 지금은 매우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머지않아 제가 누릴 천당행복을 생각하면 어려서 소풍 가기 전날 잠을 설치던 것처럼 설레고 행복하답니다. 제가 만일 중풍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이 같은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보지 못하고 구세주께서 주실 기쁨을 미리 누리지 못했을 겁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우리도 아직은 많은 고통 중에 있지만 머지않아 다가올 주님 탄생의 기쁨을 미리 맛보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2000년 전 베들레헴에 오셔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을 주신 주님, 이번 성탄에 저희의 삶에 오시어 당신 나라의 행복을 미리 누리게 해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