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상담

(83) 아들이 헤어진 여자 친구 때문에

namsarang 2010. 12. 27. 19:23

[아! 어쩌나?]

 

(83) 아들이 헤어진 여자 친구 때문에




Q. 아들이 헤어진 여자 친구 때문에
  아들이 헤어진 여자 친구를 못 잊어서 많이 힘들어합니다. 잠도 잘 못 자는 것 같고, 매일 술로 세월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뜬금없이 "수도원이나 갈까봐"하는 소리를 해서 제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저도 과거의 상처 때문에 인생을 힘들게 살아왔는데 아들마저 그러는 것이 마치 저 때문인 것 같아 죄책감도 듭니다. 어떻게 하면 아들이 과거의 아픔을 잊고 새 삶을 살 수 있을까요?

 
 

A. 나이를 먹으면서 건망증이 늘어 고민이라는 분이 많습니다. 참으로 묘한 것은 건망증이 아무리 심해도 절대 잊히지 않는 것들이 있습니다. 과거의 상처나 아픔은 나이를 먹거나 건망증이 심해져도 잘 잊히질 않습니다.
 
 아무리 잊으려고 애써도 잊혀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면 일상생활이건 신앙생활이건 상당히 큰 지장을 받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삶을 위해서는 과거의 아픔을 잊는 방법을 잘 터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처녀가 본당신부를 찾아와 "죽은 남자친구를 잊을 수가 없다"면서 "차라리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으니 추천해달라"고 했습니다. 본당신부는 그 처녀에게 아주 엄격한 수도원을 추천해주면서, 수도생활을 힘들게 하다 보면 잊힐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 년 만에 처녀가 보따리를 싸들고 나와 잊으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기도를 많이 해도 도저히 잊을 수가 없고, 날이 갈수록 더 기억이 생생해져 견딜 수가 없어 나왔노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가장 규율이 약한 수도원으로 보냈습니다. 그 수도원은 수도자들이 기도는 하지 않고 매일 잡담만 하고 사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처녀가 다시 일 년 만에 나왔는데 이번에는 환한 얼굴로 본당신부에게 감사인사를 하고는 "그 수도원 사람들이 죽은 남자친구 이야기를 얼마나 많이 물어대든지 넌더리가 나서 다 잊었다"고 하더랍니다. 그 처녀는 왜 엄격한 수도원에서 죽은 남자를 잊는 데 실패한 걸까요?
 
 그 답은 가수 나훈아씨의 '영영'이란 노래 가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잊으라 했는데, 잊어달라 했는데 그런데도 아직 난 너를 잊지못하네"하는 노랫말이 정답입니다. 괴로운 경험은 잊으려 할수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잊기 위한 노력은 심리적 억압을 의미하며 그런 억압은 사고를 더 활성화시켜 없어지기는커녕 뇌에 저장하게 하는 부작용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잊을 수 있을까요?
 
 일본 심리학자 우에키 리에는 "잊으려고 노력하지 말고 머리가 터지도록 생각하라"고 합니다. 실연당했으면 목이 터지도록 울고, 실패했다면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파하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매일같이 말입니다. 왜 이런 방법을 제안했을까요?
 
 사람 마음에는 심리적 망각곡선 혹은 애도곡선이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고 괴로운 일일지라도 매일같이 생각하면 3개월은 좀처럼 잊지 못하다가 3개월이 지나면서 급속하게 자정작용에 의해 잊게 됩니다. 몇 개월을 매일같이 죽은 남편을 생각하면서 울던 자매들이 느닷없이 재혼하는 것은 바로 이런 현상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과거의 상처를 잘 못 잊는 것일까요? 여자들은 소위 '수다 떨기'라는 독특한 방법을 통해 과거의 일을 정리하는 반면, 남자들은 "사내자식이 그까짓 것 갖고 그래, 다 잊어버려"하면서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둬 여자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입니다. 즉, 남자들도 입이 부르트도록 과거의 아픔에 대해 수다를 떨면 6개월 만에 마음정리를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본당신부가 신자들의 신앙심을 돈독하게 하려고 사순시기를 일 년 내내 하기로 하고 매일 십자가의 길과 수난 묵상을 하도록 독려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따라 하던 신자들이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었습니다. 그래도 고집이 센 그 신부는 막무가내로 밀고 나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제부터 그만하겠노라"하고 선언했습니다.
 
 궁금한 신자 한 사람이 물으니 본당신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젯밤 꿈에 주님이 나타나셔서 내 머리통을 후려치시면서 '1년에 한 번 사순시기를 보내는 것도 2000년 동안 2000번이나 했다고 신자들 원성이 자자한데, 사순시기를 매일같이 하면 누가 성당에 다니겠느냐 이 바보 같은 놈아'하고 야단치셨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지속적이지도 영속적이지도 않고 변덕스럽고 쉽게 싫증을 내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런 특성을 부정하거나 나쁘게 평가하지 말고 오히려 역이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정말 잊지 못할 가슴 아픈 일이 있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때는 잊으려고 애쓸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 지겨워하고 넌더리를 낼 정도로 생각하고, 쓰고, 말해야 합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줄기차게 한다면 최소 6개월 안에 마음정리가 될 것입니다.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