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1. 새가슴입니다
영세한 지 오래된 신자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당 어른들에게서 "참고 살아야 한다. 남자는 힘들어도 함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는 등의 말씀을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래서 저는 웬만한 일이 닥쳐도 엄살을 부리기는커녕 '사내라면 이 정도는 참아야 해'하며 삭히고 또 삭히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치면 가슴이 오그라들어서 주위 사람들이 저를 보고 새가슴이라고 놀립니다. 그런데 제 아들도 저를 닮아 엄살이 심합니다. 특히 무서움을 잘 타서 친구들이 아들에게도 새가슴이란 별명을 지어줬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사내답게 잘 참고 살라고 세례명도 요셉 성인을 본받으라는 의미에서 요셉이라고 지어줬는데, 영 제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해서 아들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아들이 문제가 있는 건가요? 아니면 아들을 싫어하는 제가 문제가 있는 걸까요? A. 아들을 싫어하는 마음은 좀 더 깊이 들여다보셔야 합니다. 아들 삶을 존중하는 마음이 아니라 싫어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아들 문제가 아니라 형제님 문제일 가능성이 큽니다. 즉, 자기 삶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분들은 투사가 심해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보면 이유 없이 적개심을 갖습니다.
어쨌건 주위 사람들이 형제님을 보고서 새가슴이라고 놀렸다는데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거의 다 새가슴들입니다. 새가슴이 새가슴을 알아보는 것이니 괘념치 마시기 바랍니다.
거의 모든 사람은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통제하기 힘든 신체 증상을 보입니다. 머릿속이 텅 빈 느낌 그리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공황상태가 일어나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납니다.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는데 토할 것만 같고 화장실에 가고 싶을 정도로 배가 아프기도 합니다. 수전증을 보이거나 목소리가 떨려서 우는 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이렇게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나타나는 신체적 증상을 '공포발작(Panic attack)'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누군가가 힘들어하면 주위 사람들은 "괜찮아질 거야. 조금만 참아봐"하고 말합니다. 혹은 자기 스스로 "이러다 말 거야. 괜찮아 질거야"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혼잣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련의 행위를 '회피적 통제'라고 합니다. 회피적 통제란 힘든 상황에서 부정적 생각을 억제함으로써 상황을 극복하려고 하는 생존기제입니다. 흔히 군대에서 '하면 된다'하는 구호를 외치게 하는 것이 전형적 사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회피적 통제는 증상이 가볍거나 사소할 때 혹은 예방적 차원(전쟁 상황이 아닌 훈련 시)에는 효과가 있으나, 당사자가 깊은 공황 상태에 빠졌을 때는 효과가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구호와 신체증상 사이 괴리감이 깊어갈수록 더 깊은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위 사람들이 "웬 엄살이냐"고 할 정도로 자신의 아픔이나 두려움 그리고 신체증상을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즉, 자신의 감정이나 신체증상을 이를 악물고 극복하려고 하거나 저항하지 말고 반대로 집요하게 언어화하다 보면 심리적 안정감과 신체적 안정감을 갖게 됩니다.
옛날 어르신 중 담력 좋은 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 아프다, 저기 아프다, 죽을 지경이다"하시는 분들이 장수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요셉 성인께서 성모님처럼 오래 사시지 못하고 일찍 돌아가신 것은 당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묻고 사셨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아드님에게 요셉 성인의 덕은 본받으라 할지언정 참고 살라거나 사내처럼 다 견디라는 말씀은 안 하는 게 좋습니다.
Q2. 신앙생활이 건조합니다
세례받은 지 꽤 됐는데, 신앙생활이 영 무미건조합니다. 거의 의무적으로 기도하거나 계명을 어기지 않으려 하는 수준입니다. 고해성사도 보기 싫고요. 어떻게 하면 좀 더 활력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A. 형제님에게 필요한 것은 영적 체험입니다. 현대인들은 종교인들이 주장하는 영적 체험을 '무의식의 장난질' 혹은 '분열증적 환시'라고 비하하는 말들을 많이 하는데, 영적 체험은 그런 것과는 다릅니다.
영적 체험은 심리학자 융이 말한 절정체험과 같은 정신적 체험영역으로써,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체험을 말합니다. 융은 사람이 인생을 건강하게 사는 조건이 절정체험 횟수와 비례한다고 했는데, 신앙인 역시 영적 체험, 하느님 체험을 얼마나 많이 했는가가 신앙생활의 활력과 비례합니다.
따라서 형제님께서도 그런 체험을 할 기회를 얻고자 노력하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종교는 신비체임을 잘 묵상해보시고요.
홍성남 신부(서울 가좌동본당 주임) cafe.daum.net/withdob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