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설]
2011년 1월 8일 토요일
무상의료의 국가 재앙 맞은 뒤 후회할 건가
국가보건서비스(NHS)라는 제도를 통해 무상의료를 실시하는 영국에서는 수술이 급한 환자도 병원 대기자(待機者) 명단에 올린 뒤 몇 달씩 기다려야 한다. 응급실에 구조요청을 해도 몇 시간이 지나서야 구급차가 도착하기 일쑤다. 거의 모든 진료비가 세금으로 충당되다 보니 병원이 비효율적이고 관료적으로 운영돼 의료서비스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 지난해 5월 영국 총선을 앞두고 노동당의 고든 브라운 총리는 “환자들이 제때 NHS 혜택을 받지 못하면 민영 병원에서 치료받도록 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총선에서 패배했다. 1997년 노동당이 똑같은 공약을 내놓았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것을 유권자들이 기억했기 때문이다.
영국의 NHS는 국가예산의 25%를 차지하고 있으며 영국 정부의 심각한 재정적자를 키우는 한 가지 요인이 되고 있다. 신속하고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원하는 환자는 외국으로 의료관광을 간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보수당 정권은 작년 집권하자마자 병원간의 경쟁 확대 등 무상의료 비용을 통제하는 의료개혁안을 발표했다. 독일은 2004년, 네덜란드는 2006년에 본인 부담금을 늘리는 의료개혁을 단행했다.
유럽의 흐름과는 반대로 한국의 민주당은 5년 안에 입원진료비 본인 부담률을 10%(현행 38.3%)로 낮추고 진료비 본인부담금을 100만 원(현행 400만 원)으로 제한하는 사실상의 ‘무상의료’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민주당은 “작년 지방선거에서 국민이 무상급식에 전폭적 지지를 보낸 것을 기억한다”며 무상의료를 내년 총선과 대선의 ‘기획 상품’으로 몰고 갈 의도를 감추지 않았다.
무상의료는 공짜 심리를 부추겨 의료 수요를 늘리고 의료서비스의 질 하락과 국가재정 악화의 재앙을 몰고 올 우려가 크다. 지금도 의료급여 대상자 중에는 이리저리 병원을 돌아다니며 국민세금을 축내는 도덕적 해이 사례가 적지 않다. 우리의 건강보험 적자는 하루 100억 원에 육박한다. 국가가 입원진료비의 90%를 부담해야 한다면 적자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민주당은 무상의료에 필요한 8조 원의 추가 재원을 보험료 인상과 국고지원 등으로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무상의료를 주장하는 좌파단체들은 건강보험료를 국민 1인당 1만1000원씩 일률적으로 더 올리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국민 1인당 평균 건강보험료는 3만3000원이다. 한꺼번에 33%를 인상하는 꼴이다. 근로자가 내는 건강보험료와 똑같은 금액을 부담하는 회사 측은 물론 건보 수입의 20%를 의무 지원하는 국고 부담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엄중한 현실에 국민이 눈을 바로 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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