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가르침)

알기쉬운 그리스도교 일치운동

namsarang 2011. 1. 16. 17:46

알기쉬운 그리스도교 일치운동

   갈라진 형제가 친교, 기도로 하나됨을 위하여

   사도들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가톨릭교회는 로마 제국의 모진 박해를 받으면서도 흩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1054년 '대분열'이 일어났다. 동로마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현 터키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교세를 키워온 그리스도인들(동방교회)은 서로마 중심의 서방교회와 문화적 차이, 교리논쟁, 정치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다툼을 벌이다 끝내 갈라서고 말았다.
▲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동방정교회ㆍ개신교 등과 마음을 열고 대화하며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의 접점을 찾고 있다. 사진은 교황 베네딕토 16세(오른쪽)가 2007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동방정교회 수장인 콘스탄티노플의 바르톨로메오 총대주교와 만나 인사를 나누는 장면. 【CNS 자료사진】

 가톨릭 입장에서 본다면, 교회는 16세기 마르틴 루터를 비롯한 소수의 개혁자들에 의해 또 한 번 분열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교회를 개혁하겠다고 일어섰지만 개혁에 실패한 채 교회 밖에 새로운 교회, 즉 개신교를 세웠다. 루터, 칼빈, 웨슬레 등이 뿌린 분파의 씨앗은 계속 퍼져나가 현재 세계적으로 개신교 교파는 500여 개에 달한다(한국 개신교 주요 교단은 약 60개).

 이어 성공회가 갈라져 나갔다. 16세기 영국 헨리 8세 국왕이 교황에게 왕비 캐서린과의 결혼 무효소송을 냈으나 교황이 거절하자 1534년 자신을 교회 수장(首長)으로 선포하면서 가톨릭과 결별해 세운 것이 성공회다. 성공회도 개신교에 속한다.

 이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교는 '한 지붕 세 가족' 생활을 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지붕 아래서 맏형 가톨릭을 비롯해 정교회, 개신교 세 형제가 따로 살고 있는 셈이다.
 
 # 분열의 아픔 속에서 "다시 돌아오라" 입장 고수

 '갈라진 형제들'은 오랜 세월 등을 돌리고 살았다. 조금씩이나마 대화를 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다. 1857년 영국 런던에서 로마 가톨릭 성향을 지닌 성공회 신부들이 가톨릭 신자들과 교회일치를 위한 기도모임인 그리스도교 일치촉진협회를 창설한 것이 현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의 시발점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등을 돌리고 나간 형제들에 대한 맏형의 서운한 마음은 풀어지지 않았다. 교황청 검사성성(현 신앙교리성)은 영국 가톨릭이 성공회와 대화를 시작하자 그곳 주교들에게 보낸 서한을 통해 앵글로-가톨릭 성향의 그리스도교 분지설(分枝說)을 배격했다.

 그리고 동방교회를 그리스도교의 단일성을 파괴한 열교(裂敎)로, 영국 성공회를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이단으로 규정한 뒤 "교회일치는 이교자들과 이단자들이 오류를 버리고 일치의 원천인 베드로와 그 후계자인 로마 사도좌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교황 비오 9세도 1868년 제1차 바티칸공의회 소집 직전 동방교회 주교들에게 띄운 초청장에 "가톨릭교회로 돌아오는 것이 동방교회 원천에 충실하는 것"이라는 의견을 첨부했다. 개신교회에도 마찬가지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교황 레오 13세(재위 1878~1903)는 새로운 대화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는 기존 열교자와 이단자라는 용어대신 '갈라진 이'라는 우호적 호칭을 사용했다. 그리고 갈라진 형제들과의 화해를 위해 일치기도를 도입했다. 레오 13세는 서로의 다름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공유하고 있는 신앙과 신학의 유산과 보화를 찾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후 후임 교황들은 레오 13세가 만들어 놓은 발판을 딛고 가톨릭교회의 일치운동을 발전시켜 나갔다.

 하지만 교황들은 신자들에게 교회일치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갈라진 형제들과의 관계 회복에 힘쓰면서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교황 비오 12세의 경우 "교회일치는 성령의 은총에 힘입어 추진되는 운동이며, 교회가 마땅히 이행해야 할 책임"이라면서도 가톨릭이 분열에 책임이 있다는 인상을 주거나, 정통교리를 위태롭게 하는 거짓 교파간 평화주의(Irenicism) 유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교회일치운동에 관한 훈령 「가톨릭교회」 1949년)

 가톨릭이 지금처럼 적극적 자세로 일치운동에 뛰어들게 된 것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제3회기 중 '일치의 재건'이란 제목으로 선포된 문헌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1964년) 덕분이다.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은 최종문서에 대한 투표가 있기 하루 전날, 19개 부분의 문구가 수정됐을 만큼 오랜 산고(産苦)를 거쳐 나온 문헌이다.
 공의회에 참석한 교부들은 갈라진 형제들과 일치하기 위해 어느 선까지 양보해야 하는가를 놓고 매일 격론을 벌였다. 왜냐하면 교회일치 문제는 역대 공의회에서 한 번도 다루지 않은 생소한 주제인데다 이에 관한 신학적 바탕도 일천했기 때문이다.

 보수 성향의 신학자들은 "자칫 종교 무차별주의를 조장해 신자들을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진보 성향의 신학자들은 "너무 소심하면 안 된다. 우리에게도 분열 책임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학자들은 토론이 중단될 때마다 일치를 염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간절한 기도,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 21)를 되뇌이며 다시 회의에 임했다.
 
 # 더 열린 자세로 일치 위해 노력 중
 
   이 같은 노력 끝에 나온 「일치운동에 관한 교령」은 지금까지 세계 곳곳에서 전개되고 있는 그리스도교 일치운동의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교령은 가톨릭 일치운동 목적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일치를 회복하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했다. 이전에는 참 교회인 가톨릭교회로 돌아오도록 호소하는 것이었다. 아울러 다른 그리스도인 단체를 '교회' 또는 '교회적 공동체'로 인정, 개신교를 단순한 개별적 종교현상으로 이해하려던 자세를 버렸다.

 또 가톨릭에도 교회 분열 책임이 있음을 인정했다. "(초기교회 이후) 더 많은 불화가 생겨 적지 않은 공동체들이 가톨릭교회의 완전한 일치에서 갈라졌으며, 어떤 때에는 양쪽 사람들의 잘못이 없지 않다."(3항)

 또 교령은 교회일치운동 발전을 위해 공동대화, 공동활동, 공동예배 등에 대한 특별지침을 내렸다. 우리가 매년 일치주간에 갈라진 형제들과 함께 공동기도회를 여는 것은 "일치를 위한 기도나 회합 때 가톨릭 신자들이 갈라진 형제들과 함께 기도하는 것은 허락될 뿐 아니라 오히려 바람직하다"(8항)고 권장한 데 따른 것이다.

 한국 가톨릭은 공의회 정신에 따라 1965년 주교회의 산하 기구로 '전국 그리스도교 재일치위원회'(현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를 발족한 이래 합동기도회, 성서 공동번역, 그리스도인 일치포럼, 종교지도자모임, 사회운동연대 등의 형태로 일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은 교회 지도자들 중심으로 이뤄지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대화와 일치운동을 신자들 신앙생활 저변으로 확산시켜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는 상태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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