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아덴만 여명 작전’ 성공 이끈 합참 군사지원본부장 “이성호” 중장
“대원들 배에 오를때 성공예감… 軍이 국민신뢰 회복할 기회 얻어”
“권투에서 링에 올라 상대방을 녹아웃(KO) 시키려면 나도 몇 대 맞아야 합니다. 한 대도 맞지 않고 상대방을 KO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인질 구출작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질과 아군 병력의 인명 피해가 전혀 없이 구출작전을 성공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군 작전은 피해를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합니다.”
해적에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21명 전원을 구출한 ‘아덴만 여명 작전’의 책임자 이성호 합동참모본부 군사지원본부장(육군 중장)은 23일 기자를 만나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이 본부장은 “국민은 완벽한 작전만을 원한다. 군도 완벽한 작전이 되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삼호주얼리호가 납치된 뒤 작전 성공까지 꼬박 6일 동안 한민구 합참의장과 함께 사무실과 지휘통제실을 오가며 가슴을 졸였다. 하지만 이날 인터뷰 내내 이 본부장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그 미소에는 안도와 기쁨, 뿌듯함이 뒤섞여있는 듯했다.
―작전이 진행될 때 가장 속을 태운 장면은 무엇인가.
“작전이 진행된 4시간 58분 내내 긴장해야 했다. 특히 가슴을 졸이며 숨을 죽이고 지켜봤던 대목은 특수전 요원들이 삼호주얼리호에 승선하는 단계였다. 승선 과정에서는 특수전 요원들이 사실상 해적들에게 무방비 상태가 되기 때문에 전체 작전에서 가장 취약한 대목이다. 그래서 앞서 링스헬기가 엄호 사격을 한 것이다. 바다 위에서 갑판까지 6m 높이를 6분 만에 두 팀의 요원 15명 모두가 승선했을 때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6m 높이를 6분 만에 두 팀의 요원 15명 모두 승선한 것은 날아간 것이다. 이때 작전 성공을 어느 정도 예감했다.”
―마음을 졸였던 대목이 더 있나.
“물론이다. 이번 작전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당연히 인질의 안전이었다. 승선에 성공한 요원들이 빠르게 삼호주얼리호를 접수해 가던 중 선교에서 부상한 선장 석해균 씨를 발견했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보고를 받는 순간 마음이 털컥 내려앉는 듯했다. 석 선장의 기지로 작전이 수월하게 진행됐는데, 그 당사자가 총상을 입었으니 마음이 아팠다. 빠른 응급처치로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보고를 받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정말 대단한 분이다. 해적의 협박과 구타에도 굴복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구해낸 주인공이다.”
―1차 구출작전에서 특수전 요원 3명이 다치고 결국 실패했는데….
“밖에서는 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군 입장에서는 실패라고 보지 않는다. 작전 진행 중에 중단한 것이다. 구출작전 명령은 청해부대 최영함이 지부티 항을 출발하기 전에 이미 내려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영함 함장은 해적들이 분산되는 모습을 보고 작전을 명령한 것이다. 해적이 분산되면 그만큼 전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접근하지 말고 돌아가라는 선원들의 신호를 투항으로 잘못 이해하고 다가가다 요원 3명이 다쳤고, 작전은 중단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더 잘못되면 군복을 벗는다는 각오를 다졌다.”
―1차 구출작전 중단이 이후 작전에 지장을 준 것은 아닌가.
“1차 구출작전이 중단되면서 우리가 외교적 협상이 아닌 구출작전을 선택할 것이라는 확신을 해적들에게 심어준 것은 사실이다. 이 때문에 전술을 바꿔야 했다. 당초 해적 모르게 작전을 하려 했던 것에다 ‘기만전술’을 가미해야만 했다. 18일 1차 구출작전 이후 쫓아가면서 포를 쏘고, 경고방송을 하며 해적을 못 자게 했다. 해적의 피로도를 높이고 주의를 교란시키면서 배에 올라타는 작전으로 바꿨다. 하지만 1차 구출작전이 2차 작전 성공의 토대가 된 것은 분명하다. 1차 구출작전 과정에서 AK소총 3정과 실탄 90여 발 등을 노획했는데 이는 해적 화력의 30%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적의 전투력을 30%나 빼앗은 것이다.”
―군사적 구출작전을 선택한 배경은 무엇인가.
“군은 피랍사건이 터질 때마다 늘 구출작전을 준비한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군은 구출작전을 준비했는데, 이전과 다른 것은 정부의 의지가 어느 때보다 강했다는 점이다. 계속 해적들에게 끌려가며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면 피랍은 반복되고 그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청와대와 군 당국 모두에 확산돼 있었던 것이다. 1차 작전은 합참의 작전명령을 받은 최영함 함장이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작전을 실시했고, 2차 작전은 더 철저히 계획된 상태에서 대통령의 승인을 받은 뒤 진행됐다.”
―작전이 성공할 것으로 예상했나.
“성공은 확신했다. 다만 성공의 기준을 국민들이 어떻게 봐줄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군 작전은 피해가 불가피한데, 국민과 선원 가족들이 어느 정도의 피해까지를 성공으로 봐 줄지 걱정이 됐다. 군 수뇌부에서는 국민들이 선원 한두 명, 요원 한두 명 정도 피해를 보면 성공으로 간주해 줄 것으로 생각했다. 그 이상이 되면 참 잘했다고 하기는 어려울 것 아니냐.”
―작전 성공의 가장 큰 요인을 꼽는다면….
“용맹한 특수전 요원(UDT/SEAL)들에게 공을 돌리고 싶다. 평소 뼈를 깎는 훈련 덕분에 최상의 준비된 상태에서 작전에 들어갈 수 있었고 결국 성공을 이끌어 냈다. 작전 면에서는 1차 작전 이후 새롭게 수립된 기만전술이 제대로 작동해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고 본다.”
―작전 개시 시점을 왜 21일 오전 4시58분으로 정했나.
“군 용어로 BMNT라는 것이 있다. ‘해뜰 무렵(Beginning Morning Nautical Twilight)’이라는 뜻인데 군에서는 해뜨기 1시간 전쯤에 작전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당시 오전 6시 41분에 해가 뜰 예정이었고 고속단정에서 특수전 요원들이 삼호주얼리호로 승선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맞출 때 링스헬기가 기동해 적을 위협하고 교란하고 엄호 사격하는 데 1시간이 걸리는 것을 감안하면 오전 5시 안팎에 작전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작전이 오전 4시 58분에 시작됐다. 21일로 정한 것은 1차 구출작전이 있었던 18일에는 이란 어선이 출몰해 이를 처리하느라 하루를 소비했고, 기만전술을 가미한 새로운 작전을 준비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데 이틀 정도가 필요했다. 특히 파나마 국적의 해적 모선이 삼호주얼리호를 지원하기 위해 다가오고 있어 준비가 끝나는 대로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작전을 어렵게 한 요인이 있었다면….
“작전 지역이 합참이나 해군작전사령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여러 가지로 어려웠다. 추가 전력을 보내는 데도 시간이 많이 걸리고, 군과 정보 당국이 입수한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었다. 할 수 없이 연합 전력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을 쓰려면 불편하지 않겠느냐. 하지만 미군의 P―3C 초계기는 작전 개시 전에 정확한 해적의 상황을 알려줘 큰 도움이 됐다. 작전이 시작된 뒤 승선에 앞서 P―3C는 해적이 삼호주얼리호 좌현 선미에 3명, 선교에 4명, 중갑판에 4명이 있다는 정보를 전달해 줬다.”
―소말리아 해역 주변으로 전력을 더 보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향후 전력 증강 계획은 있나.
“한반도의 안보 상황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을 겪은 군으로서는 우리의 안보가 우선이다. 그렇다고 해외 활동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두 가지 모두를 지킬 수 있도록 적절한 전력 배분이 필요하다. 다만 구축함 한 대를 더 보낸다는 것은 해군의 구축함 운용 면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말리아 해적이 보복할 수도 있는데 이에 대한 대비책은 있나.
“군이 나서서 할 수 있는 부분은 현재로서는 많지 않다. 선박회사나 국토해양부를 중심으로 선박에 선원대피처를 의무적으로 두고, 무장요원을 상선에 탑승시키는 방안 등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해적들이 추가 도발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번에 한국이 봉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각인시켰기 때문이다.”
―구출작전 성공으로 군의 사기가 많이 올라갈 것으로 보나.
“지난해 천안함 폭침사건과 연평도 포격 도발로 군의 위상과 사기가 땅에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구출작전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이 대한민국 군을 믿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본다. 이번 작전을 군에 믿고 맡겨준 국민과 언론에 매우 감사하다. 이번 작전의 성공은 군의 성공이라기보다는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성공이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유성운 기자 polaris@donga.com
:: 이성호 합참 군사지원본부장―1977년 육군사관학교 졸업(33기) ::
―2002∼2003년 육군 제2군단 작전참모(대령)
―2003∼2004년 국방부 연구지원부장(대령)
―2004∼2005년 합참 전비태세검열차장(준장)
―2005∼2006년 합참 작전처장(준장)
―2006∼2008년 육군 1사단장(소장)
―2008∼2009년 합참 작전부장(소장)
―2009∼2010년 육군 3군단장(중장)
―2010년 12월∼현재 합참 군사지원본부장
▲동영상=청해부대 여명작전 동영상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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