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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클턴과 石선장

namsarang 2011. 2. 9. 23:38

[오늘과 내일/고미석]

섀클턴과 石선장 

 

 

영국
의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1914년 27명의 대원과 함께 세계 최초로 남극대륙 횡단에 나섰다. 이미 두 번이나 남극점 탐험에 도전했다 꿈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번엔 목적지를 불과 150km 앞두고 항해를 중단해야 했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얼어붙은 바다에 꼼짝없이 갇혀 월동기지로 삼았던 배 ‘인듀어런스’호마저 얼음에 부딪혀 부서지면서 침몰했다.

위기상황에서 빛난 리더십

탐험대는 작은 보트만 챙긴 채 남극해를 떠다니는 얼음덩어리에 몸을 옮겨 싣고 처절한 투쟁을 시작했다. 섀클턴은 원대한 꿈을 접고 대원들과 살아 돌아가는 것으로 방향을 튼다. 이 목표를 완수하기까지 여러 차례 실패가 되풀이됐고 그때마다 새로운 선택과 궤도 수정이 요구됐다. 마침내 섀클턴은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다섯 대원을 데리고 죽음의 바다를 건너는 영웅적 사투를 거쳐 전 대원을 구출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그는 아내에게 이런 편지를 썼다. “드디어 해냈소…한 사람도 잃지 않고, 우리는 지옥을 헤쳐 나왔소.”

‘탐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생존 드라마’를 떠올린 것은, 해적에게 납치된 배에서 전원 구출되기까지 석해균 선장의 역할에 대한 소식을 접하면서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한 상황에도 부하들을 다독이며 길을 찾아낸 두 리더십은 그들의 지난한 여정과 함께 내게 신선한 깨달음을 주었다. 기록 수립이든 물자 수송이든 당초 임무는 한없이 아득해진 상황이지만 그들은 미련을 두지 않았다.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극한 환경에서 ‘생존’이란 목표가 더 시급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첫 목표는 외부의 벽에 막혀 실패했지만 이들은 변화하는 여건에 맞춰 더 빛나는 성취를 이뤄냈다.

‘누구에게나 오늘이라는 그물 속에는/풀어야 할 얼킨 그물과 기워야 하는 찢어진 /그물이 있다/내 키보다 더 높게 쌓인 오늘이란/그물더미 앞에서/헝클어진 오늘의 끝을 찾으려고/서성이는 나는/찢겨진 가닥 어디를 추켜들고 어디를 먼저/기워야 하는가’(전순영의 ‘포구에는’)

남들이 저만치 앞서가는데 이상하게 나만 뒷걸음질치는 듯할 때, 세상의 서슬에 무릎 꺾일 때 이들의 용기를 기억해둘 필요가 있겠다. 내가 생각한 꿈의 궤도를 따라 도착점까지 직진코스로 달리는 것만이 행복은 아니며, 궤도 수정이 세상의 끝은 아니라는 것. 지나고 보니 목표 지점에서 우회하거나 멀어지는 듯 보였던 숱한 시행착오가 있었기에 어렴풋이 인생의 참맛도 깨치고 사람 구실에 한 발짝 다가서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1969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을 때 그 소요시간과 운항궤도는 당초 예상에서 벗어나 있었다고 한다. 완벽한 계산을 통해 발사했음에도 궤도 수정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는 것이다. 오직 최종 목표만은 잊지 않은 채 환경에 맞춰 다른 길을 찾고 또 찾은 끝에 달에 이를 수 있었다는 얘기다.

때론 삶의 항로에도 궤도수정 필요

졸업 시즌이다. 한국의 2월은 원하는 대학이나 직장에 가지 못해 축 처진 어깨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청춘이 늘어나는 때다. 그러나 ‘젊은 그대’라면 처음 품은 목표에 대한 과도한 집착 때문에 화내거나 실망하기보다 내가 서 있는 현 궤도를 따라 흔들리며 항해하는 인내심을 가져보면 어떨까. 궤도는 수정될 수 있다. 남극 바다에서건, 우주의 허공에서건. 물론 마음의 지도에서도 궤도 수정은 가능하다.

‘오늘 하루/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없어서는 아니 될/하나의/길이 된다/내게 잠시 /환한 불 밝혀주는/사랑의 말들도/다른 이를 통해 /내안에 들어와/고드름으로 얼어붙는 슬픔도/일을 하다 겪게 되는/사소한 갈등과 고민/설명할 수 없는 오해도/살아갈수록/뭉게뭉게 피어오르는/나 자신에 대한 무력함도/내가 되기 위해/꼭 필요한 것이라고/오늘도 몇 번이고/고개 끄덕이면서/빛을 그리워하는 나’(이해인의 ‘길 위에서’)

                                                                                                                                                                          고미석 전문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