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 피어난 믿음의 향기
69~155/6. 소아시아 스미르나 사망. 주교. 사도교부. 순교자. 2월 23일 그리스도인들을 공개적으로 처형하던 화형장에 86살 노(老)주교 성 폴리카르포가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탄식이 터져 나왔습니다. 성 폴리카르포 주교는 뛰어난 학식과 겸손한 성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큰 어른'으로 존경받던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형을 집행하는 총독은 성인에게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성인은 "내가 86살이 되도록 섬겨온 그 분은 나의 왕이며 구세주이시다. 나를 조금도 해치지 않으신 분인데 어떻게 배반할 수 있겠는가"라며 총독의 회유를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그리고 의연하고 당당한 태도로 장작더미 위에 올라섰습니다. 총독 부하들은 그가 불에 탈 때 몸부림치지 못하도록 팔다리에 못을 박으려 했지만 성인은 "하느님께서는 당신들이 못을 박지 않더라도 나에게 견딜 힘을 주실 것"이라며 굳은 믿음을 드러냈습니다. 스미르나 교회가 남긴 「폴리카르포의 순교록」은 장작불길이 그의 몸에 붙지 않고 감싸는 형태로 타올랐고 그의 몸은 빛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화형장엔 향기가 가득 번졌다고 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은 성 폴리카르포는 사도 요한의 제자로 '사도교부(使徒敎父)'라 불립니다. 사도교부는 1~2세기 예수의 12사도에게 직접 복음을 배우고 전해들은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성 폴리카르포는 소아시아 서해안 항구도시 스미르나(오늘날 터키) 주교로 아시아 지역에서 존경받는 스승이었습니다. 그가 남긴 저술로는 「필립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있습니다. 성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편지에는 그리스도인의 실천적 삶을 강조하는 내용이 담겨있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교회 가르침을 성실히 따르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 것을 당부했습니다. 그는 순교하기 전 로마를 방문해 아니체투스 교황을 만나 서방교회와 아시아교회가 달리 기념하는 부활절 날짜 등 차이를 보이는 전례문제를 논의했습니다. 성인과 교황은 부활절 날짜에 대해 끝내 합의를 이루지 못했지만 교회일치에 뜻을 같이하며 서로의 전례를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칫 동ㆍ서교회가 갈라질 수 있는 위기를 막은 것입니다. 사진/그림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