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사설]
2011년 2월 26일 토요일
조용기 목사 ‘대통령 하야’ 발언 지나쳤다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가 그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신임 회장 취임예배에서 이슬람채권법 반대 의사를 천명했다. 조 목사는 이슬람채권법이 계속 추진되면 이명박 대통령 하야(下野) 운동을 벌이겠다고 강조했다. NCCK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와 함께 개신교를 대표하는 단체다. 조 목사가 NCCK 회장 취임예배에서 한 말이라 교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클 것 같다. 얼마 전에는 한기총의 길자연 대표회장이 한나라당 지도부를 방문해 이슬람채권법 통과에 협조한 국회의원에 대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공언한 적도 있다.
이슬람채권법안은 이른바 중동의 오일머니를 활용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으로 종교적 관점이 아니라 경제적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 종교단체의 대표자나 지명도 높은 종교인이 정부 정책에 관해 대통령 하야 또는 국회의원 낙선운동을 거론하는 것은 도를 넘어섰다. 우리 헌법은 국교(國敎)를 인정하지 않고 정치와 종교의 분리 원칙을 명백히 하고 있다. 국가권력은 특정 종교를 우대하거나 차별하지 않을 의무가 있다. 마찬가지로 종교의 정치 개입도 금물이다. 정교분리(政敎分離)는 종교의 정치개입으로 혼란을 겪은 서구의 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정립된 원칙이다. 한국은 이러한 역사적 경험이 적기 때문인지 종교인들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을 개의치 않는 분위기가 있다.
개신교계는 이슬람채권 거래 이익의 2.5%가 자카트라는 이름으로 자선단체에 흘러가 테러자금이 될 우려가 있고, 다른 외화채권에 비해 이슬람채권에 더 많은 면세 혜택을 준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자카트는 이슬람채권뿐 아니라 모든 거래에서 다 발생하고 이슬람채권에 특별히 더 혜택을 주는 것은 없다. 서구 기독교 국가 중에 종교적 이유로 이슬람채권을 반대했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한나라당 김무성 원내대표가 개신교의 압력에 굴복해 이슬람채권 논의를 미룬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가 “정치가 교회의 협박에 굴복했다”고 비판한 것은 옳다. 국가는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어느 쪽을 우대하거나 차별해서는 안 된다. 9·11테러를 당한 미국에서도 이슬람교와 알카에다 같은 테러집단은 분명하게 구분한다.
개신교도인 이명박 대통령 집권 후 정부와 종교 간에 갈등이 자주 빚어지는 것은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에 비추어 바람직하지 않다. 지난해 말 템플스테이 예산이 삭감되면서 불교계가 크게 반발했다. 천주교 주교회의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치와 종교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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