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종서]
3·1절에 되짚어보는 참종교인
3·1운동은 왜 일어났을까? 아마도 한민족의 독립에 대한 열망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핵심에는 한국의 종교들이 있었다. 물론 객관적 배경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고종의 갑작스러운 사망 그리고 도쿄 2·8독립선언이다. 거슬러 올라가 한말 의병투쟁이나 애국계몽운동에서 비롯된 국권회복운동이 항일에너지로 분출되었다고도 한다.
나라 위한 희생-他종교와의 화합
그러나 이러한 배경적 여건들이 실제로 구현되는 데 종교가 앞장섰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 모두가 종교인이었고, 3·1운동에 연루돼 일본 헌병대가 조사한 2만 명 가까운 피검자 중 절반 이상이 종교인이었다. 그뿐만 아니다. 처음 계획은 물론이고 독립선언서를 전국에 퍼뜨려 역사상 최대 민족운동으로 만든 데는 종교들의 조직망이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그때라고 어디 종교 간 갈등이 없었겠는가? 밀려오는 기독교와 그들을 막아내려던 전통종교들 간에는 치열한 포교 경쟁이 있었다. 개화와 수구 간 논쟁도 대단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넘어서 천도교와 개신교, 불교가 일제의 탄압을 무릅쓰고 함께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을 벌였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이해타산적으로 한 것이 아니라 희생을 감수한 점에서 숭고하다. 오산학교를 세운 이승훈(李昇薰)이 33인 중 기독교 대표로 참여한 것은 교단의 이익보다 민족을 구하겠다는 굳은 의지에서였다. 또 일제에 저항하려 ‘님의 침묵’을 썼던 한용운(韓龍雲)도 불교 대표로 참여해 옥고를 치렀다. 불교유신을 도모하는 등 교단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하지만 나라가 없으면 종교도 없다고 생각하였고, 그것을 위해 다른 종교들과 과감히 화합을 이루어 낸 것이 3·1운동에 나타난 참종교인의 모습이었다.
오늘날에도 한국 종교들은 국가적인 일에 다양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번 정권의 시작부터 각종 종교 편향적 사례가 사회적 담론이 되더니 세종시 문제나 4대강 정책 등 국가 현안들에 우리 종교들은 어김없이 입장 표명을 해왔다. 얼마 전 한 종교단체가 여는 행사에 초청받아 가본 일이 있다. 단상에 종교인은 거의 없고 권력 중심에 있다는 여야 정치인들이 꽉 차 있는 것을 보면서 종교행사인지 정치판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쯤 되니 요즘엔 종교가 정치의 필수요소라는 말까지 나온다. 최근 종교 간 갈등 양상들이 직접적이기보다 정부를 가운데 두고 생긴다는 특징도 이런 점들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템플스테이에 정부 예산을 배정하는 문제를 두고 33인 중 한 명이었던 길선주(吉善宙)는 어떻게 했을까? 그는 한국 전통적 수련의 맥을 살려 서구 기독교에 없던 ‘새벽기도회’라는 독특한 예배 형식을 만들어낸 목사다. 분명히 템플스테이는 전통문화니 당연히 국가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했을 것이다. 또 33인 중 백용성(白龍城)은 어떠했을까? 대각운동으로 불교 대중화에 앞장섰던 그는 적어도 예산을 배정하는 데 도움을 못 준 정치인이든 누구에게든 사찰의 문을 활짝 열어놓았을 것 같다.
33인은 요즘 종교갈등에 뭐라 할지
이른바 ‘이슬람채권(수쿠크)법’ 제정을 놓고 가타부타 말도 많다. 한 원로목사가 대통령 하야 운동 운운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착잡하기까지 하다. 처음부터 해당 경제문화를 고려하여 공정한 과세안을 만들지 못하고 마치 특정 종교에 특혜를 주는 듯 보인 건 잘못이다. 그럼 33인에 포함되었던 기독교 대표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참종교인들로서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국익을 따졌을 것 같다. 그리고 적어도 다른 종교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희생하면서라도 다른 종교들과도 화합을 추구한다는 것이 3·1운동의 근본정신이었기 때문이다.
김종서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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