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살로메의 춤' (베노초 고촐리 작, 1461~62년) |
춤은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율동적인 몸의 움직임으로, 동작 하나하나는 무언가를 상징하고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50년대 주부들 탈선 대명사로 춤바람이 거론되며,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기도 했다. 정비석은 소설 '자유부인'을 통해 교수 부인의 춤바람 탈선을 비판했다.
그러나 오늘날 춤을 보는 시각은 많이 다르다. 직장인들, 노인과 중년 부부 등 많은 이들이 문화센터나 동호회 활동으로 춤을 배운다. 이들은 춤이 삶의 활력이 된다고 입을 모은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춤은 종교의식에서 빠지지 않는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사원에 고용된 무용수가 종교의식, 왕과 귀족들 장례식, 농민들의 풍요를 비는 제식에서 춤을 추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대부터 종교의식에 춤이 있었으며, 지금도 무속춤과 불교춤이 이어지고 있다.
춤은 기본적으로 슬픔의 반대인 기쁨의 상징이다. "당신께서는 저의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고 저의 자루옷 푸시어 저를 기쁨으로 띠 두르셨습니다"(시편 30,12).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여곡절을 딛고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의 성막으로 옮겨 안치한 날, 다윗은 기쁜 나머지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2사무 6,14).
춤은 또한 찬양의 상징이 된다. 성경에서 춤은 종종 노래와 악기들과 결합해 등장한다. 춤은 하느님께 신앙을 고백하고 감사하는 방식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무사히 건넌 뒤 한 행동이 바로 춤을 춰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 것이었다. "예언자이며 아론의 누이인 미르얌이 손북을 들자, 여자들이 모두 그 뒤를 따라 손북을 들고 춤을 추었다"(탈출 15,20).
하지만 우상의 유혹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적인 힘의 은총을 받기를 기원하며 수송아지 상 앞에서 춤을 추기도 했다. "모세는 진영에 가까이 와 사람들이 춤추는 모습과 수송아지를 보자 화가 나서, 손에 들었던 돌 판들을 산 밑에 내던져 깨 버렸다"(탈출 32,19).
신약성경에서 춤은 사람의 기쁨, 죄인들까지 포함한 모든 이와 친교를 나누는 자유를 상징한다(루카 7,32-34). 신약성경에서 가장 인상적인 춤은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가 헤로데 앞에서 춤을 추고, 그 댓가로 세례자 요한의 죽음을 요구한 것이다.
"그 자리에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가 춤을 추어, 헤로데와 그의 손님들을 즐겁
게 하였다. 그래서 임금은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원하는 것을 나에게 청하여라. 너에게 주겠다'하고 말할 뿐만 아니라,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주겠다'하고 굳게 맹세까지 하였다"(마르 6,22-23).
초기교회 시대부터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나 순교자 무덤가에서 춤을 추며 순교자들의 축일 전야를 축하했다. 춤으로 순교자의 영광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믿음과 기쁨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춤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갖기도 했다. 상스러운 노래나 음란한 동작 때문이었다. 이런 이교도적인 춤의 관습 때문에 춤이 있는 곳에 악마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춤은 종교적 관념과 풍습에서 완전히 분리될 수 없었다. 교부들은 일반적으로 춤의 육체적 동작이 영혼의 움직임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암브로시오 성인도 춤을 '영혼의 갈채'라고 높이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