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성철]
공부 안 시키는 게 진보는 아니다
몇 년 전 모임에서 한 대학교수를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서울의 집을 정리하고 경기도의 한 농촌마을로 이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직업 특성상 출퇴근시간이 비교적 자유로운 덕분에 내릴 수 있는 결단이었다.
전원생활의 장점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녀 교육 문제가 궁금해졌다. 그는 초등학생 남매를 ‘논밭과 들판에서 키운다’고 했다. 학원이나 과외는 애초에 염두에도 없는 듯했다. 상급학교 진학이 걱정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나도 학창시절 공부를 잘했지만 어른이 돼 보니 별거 없더라. 공부 아니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의 대답은 신선하게 다가왔고 결단력이 부럽기도 했다. 많은 부모가 아이를 위해서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자녀의 행복을 빼앗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임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한 번 더 곰곰 생각해 봤다. 그의 선택은 과연 자녀를 위해 최선이었을까. 그 역시 극성 학부모와는 정반대의 얼굴을 가진, 또 다른 독선적인 부모일 뿐이지 않을까.
그 교수는 자신의 직업이나 처한 상황이 만족스럽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본인의 삶과 자녀 교육문제에 대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학창시절 열심히 공부한 데 대한 보상일 수도 있다. 학창시절 공부할 여건이 안 됐던, 또는 공부를 등한시한 많은 사람은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상대적으로 좁을 것이다.
그의 결정과 선택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이들은 시골마을에서도 얼마든지 공부를 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왜 비슷한 처지의 다른 부모들처럼 우리를 키우지 않았느냐”고 원망한다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 부모의 교육열은 미국 대통령도 감탄할 정도로 뜨겁다.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 일부에서는 과열에 대한 거부반응도 만만치 않다. 내가 아는 어떤 사람은 자녀들에게 늘 “공부하지 말고 놀라고 말한다”고 자랑한다. 무작정 공부만을 강요하는 것이나 한창 공부해야 하는 자녀에게 놀기만 하라는 거나 모두 어른들의 욕심과 독선이다.
10일 고교 1∼3학년생을 대상으로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실시됐다. 이 가운데 서울 강원 경기 광주 전북 등 이른바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있는 지역의 고교 1, 2학년은 시험을 보지 않았다. 교육감이 지나친 학력경쟁을 지양한다며 학력평가를 4회에서 2회로 줄였기 때문이다.
이 시험은 대학수학능력시험과 같은 형태인 데다 응시 인원도 비슷해 학생들이 미리 수능을 연습하고 적응하는 기회가 된다. 이를 통해 본인의 실력이 어느 수준에 해당하는지 파악해볼 수도 있다.
진보교육감이 있는 지역에 사는 학생들은 이런 중요한 기회의 절반을 박탈당했다. 다른 시도의 학생들은 수능을 1년에 네 번 연습하는데 이들 시도 학생들은 두 번만 하라니…. 교육계에서 자칭 진보라 하는 인사들은 가능한 한 학생들이 공부하지 못하도록 하는 게 정의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진보교육감들은 선거에서 선택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뜻대로 정책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유권자는 본인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학생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거나 희생시킬 권리까지 준 것은 아니다. 참 무책임한 어른들이다.
홍성철 동아이지에듀 대표 sung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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